日전범 딸이 쓴 엉터리 조선 회상기 美중학교 필독 교재 채택

  • 입력 2007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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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과 보스턴의 한인 학부모들이 일제강점기 말기를 소재로 한 소설 ‘요코 이야기’(사진)를 학교 교재 목록에서 추방하기 위해 힘겨운 노력을 펼치고 있다. ‘요코 이야기’는 일제 패망 직전인 1945년 7월 함경북도 나남(청진시)에 살던 일본인 가족이 한국을 빠져나와 일본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11세 소녀 요코의 눈으로 묘사한 영어 소설. 재미 일본인 작가로 전범의 딸인 요코 가와시마 잡킨슨(73) 씨의 데뷔작이다.》

이 소설은 1986년 ‘So far from the bamboo grove·대나무 숲에서 아주 멀리 떠나와)’란 제목으로 출간된 뒤 미국 내 상당수 중학교에서 영어교재로 채택돼 왔다. 한국에도 2005년 ‘요코 이야기’(문학동네)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다.

그러나 한국인이 일본인을 상대로 강간 등 온갖 잔학한 행위를 한 것처럼 기술한 이 책의 내용에 지난해 미국의 한인 학부모들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뒤늦게 논쟁의 불씨가 피어올랐다.

▽한인 학생과 주부들의 분노=지난해 봄 뉴욕의 주부 수잔나 박 씨는 초등학교 6학년 딸이 학교 영어 교재라며 들고 온 이 책을 읽고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일제 패망기라는 시기적 특수성과 주인공이 ‘일본인 소녀’라는 점을 감안해도 이 책은 마치 일본인이 한국인들에 의해 온갖 잔학한 행위를 당한 피해자인 것처럼 묘사했다.

11세 소녀 요코가 어머니, 언니와 함께 나남에서 서울과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가는 과정에서 한국인들의 무자비한 추적을 간신히 피했고 강간과 살상이 자행되는 것을 목격했다고 기술한 것.

박 씨를 비롯한 한인 학부모들은 학교 측에 교재 목록에서 삭제할 것을 요구했고 지난해 9월 학교 측도 이를 받아들였다. 비슷한 시기에 보스턴의 한인 학부모들도 일부 학교로부터 도서목록에서 삭제하겠다는 결정을 이끌어 냈다.

▽힘겨운 투쟁=그러나 보스턴의 도버셔번중학교는 지난주 지역학교위원회를 열고 지난해 11월의 교재 삭제 결정을 번복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학교 측은 “삭제 결정은 검열에 해당할 수 있으며 책을 읽은 학생들의 반응이 긍정적이었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에 한인 학부모들은 “영어교사와 타민족 학부모들의 반발 때문”이라고 안타까워하면서 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태세다.

▽‘조작된 실화’ 논란=문제는 “전쟁과 관련한 다양한 시각을 드러내 준다”는 출판사 측의 설명과 문체 등의 일정한 성취를 인정한다 해도 이 책이 가공의 일을 경험담에 섞어 포장하거나 벌어진 일들의 단면만을 의도적으로 다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책은 중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반발을 불러와 출판을 못했으나 한국어판으로 나올 당시 국내 언론이나 출판계에선 별다른 검증 작업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요코 씨는 2005년 7월 21일자 본보에 보도된 재미 번역가 윤현주 씨와의 대담에서 “일본은 사과를 제대로 하지도 않았는데 왜 우리가 일본인들의 고생담을 들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한일 관계를 떠나 소녀 시절 겪고 느낀 어려웠던 일들을 솔직히 써 보고 싶었다. 한국인들을 괴롭힌 것은 일본 정부와 군인들이었으며 일본의 보통 사람들도 일본 군인들에게서 괴로움을 많이 겪었다”고 답변했다.

그는 당시 “일부 가명 사용을 제외하면 내용은 모두 사실”이라고 밝혔으나 일제 패망기에 미군이 북한 지역을 폭격했다는 묘사를 비롯해 당시의 사실과 배치되는 대목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편 외교통상부는 지난해 9월 ‘요코 이야기’에 한국인의 이미지를 왜곡하는 내용이 포함됐다는 사실을 파악해 미국 연방교육부와 매사추세츠 주 교육부 및 주지사 등에게 시정을 요구하는 서한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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