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자와 미국에 죽음을” 후세인 최후까지 저항

  • 입력 2007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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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트기도 전, 새벽 형장으로 가는 길은 추웠다. 사형수는 1940년대풍의 모직 스카프와 모자, 긴 검정 코트 차림이었다.

지난해 12월 30일 오전 5시경.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바그다드 미군특별기지 크로퍼 내부의 교도소에서 카다미야의 옛 정보부 건물로 인계됐다. 후세인이 재임 시절 저항 인사들을 가두고 고문했던 바로 그곳. 세월은 돌고 도는 것일까. 이제는 그곳 형장의 교수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이라크 정부 관계자들은 “종교행사 ‘이드’가 끝나는 다음 주까지는…”이라며 사형 집행 임박설을 부인했다. 그러나 물밑에서는 교수형 집행 절차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26일 사형 확정 직후부터 영장 서명과 처형명령서 준비, 교수형을 참관할 증인 14명의 소환 절차가 꼬리를 물 듯 빠르게 이어졌다.

▽“나 없는 이라크는 아무것도 아니다”=후세인은 검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3명의 사형집행관에게 둘러싸여 사형장에 들어섰다. 교수대가 설치된 어두침침한 방은 이미 카메라맨과 증인, 교도소 관계자들로 북적였다. 역겨운 냄새가 풍겼다.

집행관이 사형수에게 씌우는 두건을 건넸지만 후세인은 두건을 거부했다. 집행관이 “올가미가 조여 들면 목이 잘릴 수 있다”며 그 대신에 두건을 목에 감았다. 이어 그를 교수대 위로 올라서게 한 후 굵은 노란색 밧줄로 된 올가미를 걸었다.

후세인은 공포에 얼어붙은 표정이었지만 이례적으로 평온해 보였다고 한 입회인은 전했다. TV로 공개된 장면은 여기까지였다. 이하 처형 장면은 입회자들의 전언에 따른 것.

목에 올가미가 걸린 후세인은 “후회나 두려움은 없느냐”는 질문에 “없다. 나는 한평생 지하드(성전)를 위해 싸워 온 군인이다. 이 길을 걷는 자는 그 누구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대답했다. 이어 그는 손에 꽉 쥐고 있던 코란을 “반다르에게 전해 달라”며 입회인에게 건넸다. 그와 함께 사형선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복동생 아와드 알 반다르 혁명재판소장의 아들을 뜻했다.

잠시 후 후세인은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이슬람 성직자를 따라 짧은 기도를 읊조렸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나 없는 이라크는 아무것도 아니다”는 한마디였다고 사형 장면을 촬영한 비디오 기사 누리 알마세디 씨가 전했다.

순간 그의 다리를 지탱하던 형장의 발판이 꺼졌다. 밧줄에 매달린 후세인의 몸은 심하게 떨렸다. 1분 정도가 지나자 그는 눈을 부릅뜬 상태로 숨을 거뒀다. 최종 사망을 확인할 때까지 그는 9분 정도 더 매달려 있었다.

이라크 국영 TV는 이후 온몸이 흰 천으로 둘둘 말린 채 콘크리트 바닥에 눕혀진 후세인의 시신을 공개했다. 눈을 감은 그의 얼굴은 오른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왼뺨의 광대뼈 부분과 목 주변에는 붉은 핏자국이 선명하게 비쳤다.

▽끝까지 반항적=TV에 공개된 그의 모습은 비교적 순종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공개된 장면 직전까지 그는 집행관들에게 욕설을 하고 큰 소리로 저주를 내뱉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형 집행에 앞서 사형장 옆방의 판사실로 들어간 그는 판결문 낭독이 시작되자 “국가여, 국민이여, 팔레스타인이여 영원하라”를 끊임없이 외쳤다. 얼굴을 가린 사형집행관들의 사투리와 갈색 피부 색깔을 보고는 이들이 시아파임을 눈치 채고 “신의 저주를 받아라”며 이들과 욕설을 주고받았다.

한 집행관이 “당신이 우리의 삶을 파괴했다”고 말하자 그는 “내가 너희들을 비참한 곤궁과 페르시아(이란), 미군 같은 적들의 손에서 구했다”고 맞받아쳤다. 그는 다함께 기도를 하다 한 집행관이 “무크타다(시아파 지도자)를 도우소서”라고 말하자 그를 돌아보며 “무크타다?”라고 냉소하기도 했다.

무니르 하다드 판사는 “후세인이 ‘우리는 천국에 갈 것이며 적들은 지옥에서 썩어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자신은 이라크의 구원자였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죽음을 코앞에 둔 순간까지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반역자와 미국, 스파이, 페르시아(이란)를 저주하는 말이었다”며 “일생 동안 한번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던 후세인은 마지막까지 반항적이었다”고 전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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