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새주역]전쟁-가난 몰라… “평화헌법 NO” 목청

  • 입력 2006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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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전후(戰後)세대가 사회의 중심이 됐다. 우리 세대는 용기와 책임을 갖고 부모들이 남긴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1954년생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올해 자민당 총재선거 과정에서 ‘전후세대 역할론’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1945년 이후 태어난 전후세대는 1억2000만 일본 인구의 4분의 3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집권 자민당의 중의원 의원만 하더라도 전체 292명 가운데 68.2%에 해당하는 199명이 전후 출생자다. 첫 전후세대 총리 탄생을 계기로 일본 정치의 새 주역으로 주목 받고 있는 이들을 조명해 본다.》

○ 전후세대 실세 측근 부상

아베 총리는 27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54) 국가안전보장문제담당 총리보좌관을 배석시켰다.

아베 총리는 부시 대통령에게 고이케 보좌관을 소개한 뒤 고이케 보좌관과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담을 희망했다. 외상이나 관방장관이 해들리 보좌관을 상대해 온 관례에서 벗어난 이례적인 요청이었다.

28일 노무현 대통령과 아베 총리 간의 통화 내용을 기자들에게 설명한 사람은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43) 홍보담당 총리보좌관이었다. 이 또한 종전대로라면 외무성이 브리핑할 사안이었다.○ 전후세대가 뭉쳤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를 비롯해 1945년 이전 출생자 4명이 후보로 출마한 2003년 자민당 총재선거전 당시 일부 중견·소장의원은 물밑에서 ‘젊은 독자후보’를 세우기 위한 작업을 은밀히 추진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출마에 필요한 추천인(의원) 20명에서 1명이 부족했기 때문.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70세인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관방장관이 ‘아베 대항마(對抗馬)’로 주목받던 6월 초 도쿄 자민당본부에서는 자민당 의원 94명이 참석한 가운데 ‘재도전의원연맹’ 설립총회가 열렸다.

아베 후보의 선거운동본부 역할을 한 이 조직의 가장 큰 특징은 파벌을 불문하고 중견과 소장의원들이 모였다는 점이었다.

재도전의원연맹이 아베 총리 탄생에 얼마나 크게 기여했는지는 산파역이었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57) 의원과 야마모토 유지(山本有二·54) 의원이 총무상과 금융상으로 나란히 입각한 점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전후세대 의원들의 세력화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진행돼 왔다. ‘신세기의 안전보장체제를 확립하는 젊은 의원들의 모임’, ‘고이즈미 정권의 성역 없는 구조개혁 단행을 지원하는 젊은 의원 모임’, ‘21세기 교육을 만드는 젊은 의원들의 모임’ 등등. ‘젊은 의원’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조직이 자민당 안에서 속속 만들어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각을 나타낸 것이 아베 총리와 측근들이 출범을 주도했던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의 모임’, ‘평화를 바라고 진정한 국익을 생각하며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지지하는 젊은 의원의 모임’ 등이다.

○ ‘전후정치’를 ‘전후세대 정치’로 바꿔

이들 모임은 평화헌법과 교육기본법의 개정, 과거사 미화 등 ‘전후체제’의 근본을 부정하는 성향이 강하다. 심지어 패전일(8월 15일)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뒤 부를 군가(軍歌)를 연습한 의원 모임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쟁과 가난 등 일본 제국주의가 가져다준 비참함을 직접 체험하지 않고 자란 이들 세대의 성장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아베 총리만 해도 한국전쟁 특수(特需)로 일본이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1954년에 태어나 도쿄(東京) 올림픽이 열리고 신칸센(新幹線)이 개통되는 등 일본 경제가 눈부시게 성장하는 기간에 학창시절을 보냈다.

가정을 꾸리고 정계에 입문할 무렵에는 미국을 향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 출간될 정도로 일본의 국가적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개인사로 봐도 고난이나 역경과는 거리가 먼 정치인이 대부분이다.

예컨대 자민당의 전후세대 중의원 의원 199명 중 68명이 의원 할아버지나 장관 아버지 등 정치인 집안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비례대표를 제외한 지역구 의원 142명은 2명 중 1명꼴인 60명이 2, 3, 4세 의원이다. 자민당의 전후세대 의원들에게는 정치명문가에서 태어나 일반 기업에서 잠깐 사회생활을 맛본 뒤 정치인인 아버지의 비서로 일하다가 의원이 된 아베 총리야말로 가장 평균에 가까운 인물인 셈이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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