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軍 항명 일단 소강…비상사태 해제는 안해

  • 입력 2006년 2월 28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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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부 시위와 군부의 반발로 어수선했던 필리핀 정국이 27일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다.

사령관 해임에 반발했던 해병대 장교들이 지휘계통의 명령을 따르기로 한 데 이어 가톨릭 교회는 반정부 시위에 소극적 입장을 표시했다.

26일 필리핀 수도 마닐라 외곽 포트 보니파시오 해병대 본부에서 해병사령관 레나토 미란다 소장의 해임을 문제 삼아 100명의 무장병력을 이끌고 농성을 벌이던 아리엘 케루빈 해병여단장(대령)이 신임 사령관 넬슨 알라가 준장의 설득 끝에 지휘계통에 복종할 것을 선언함에 따라 농성 사태는 5시간여 만에 종결됐다.

마닐라 대주교인 가우덴시오 로살레스 신임 추기경은 이날 비서를 통해 ANC방송사에 전달한 서한에서 “어떤 단체에도, 어떤 일로도 모이도록 지시한 바 없다”며 가톨릭교회가 시민들에게 반정부 집회에 참여하라고 촉구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 대변인실은 당초 국가비상사태를 26일 해제할 계획이었으나 보니파시오 해병대 기지에서 일어난 사태 때문에 해제 시기를 약간 늦추기로 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날 경찰특수기동대장인 마르셀리노 프랑코 총경 등 경찰 고위관리 4명이 ‘제한적인 감금상태’에서 조사를 받고 있으며 크리스핀 벨트란 하원의원을 비롯한 야당 지도자 16명이 정부 전복 혐의로 기소됐다.

▼가톨릭 ‘피플파워’에 개입 않기로▼

과거 두 차례 ‘피플 파워’의 분출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필리핀 가톨릭교회가 이번 시위에는 동조의 신호를 보내지 않고 선을 그어 관심이다.

최근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내정된 가우덴시오 로살레스 마닐라 대주교는 26일 비서를 통해 “어떤 단체에도 어떤 일로도 모이도록 지시한 바 없다. 나는 사람들이 속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고 필리핀 언론이 보도했다.

로살레스 대주교의 전임자인 하이메 신 추기경은 1986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을 축출한 제1차 ‘피플 파워’에서는 물론 2001년 조지프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을 쫓아낸 제2차 ‘피플 파워’에서도 핵심 역할을 했다.

필리핀 가톨릭교회가 이후 피플 파워에 신중한 태도를 취한 것은 합리적인 제동 장치가 없다시피 한 민중의 힘에 대한 회의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1차 피플 파워는 민주주의의 위대한 승리로 인정되고 있지만 필리핀은 1차 피플 파워의 성과로부터 결실을 보는 데 실패했다. 가문정치와 족벌주의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1차 피플 파워 이후 15년이 지나 2차 피플 파워가 일어났다. 2차는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의 축출이라는 결과로 이어졌지만 필리핀 사회를 양극화해 피플 파워의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했다. 실패하긴 했지만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주도한 3차 피플 파워가 발생했다. 2, 3차 피플 파워를 거치면서 피플 파워는 ‘군중 지배(mob rule)’라는 부정적 함의를 띠게 됐다.

이후에도 다양한 집단이 피플 파워를 내세우며 부패 정권을 공격하고 교체하려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이같이 걸핏하면 헌정 외의 수단을 동원하려는 경향은 고질적인 분배 문제와 함께 필리핀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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