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계 25세 濠청년 마약 400g 운반죄로 사형

  • 입력 2005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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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은 호주이지만 베트남계인 응우옌뜨엉반 씨가 2일 싱가포르 창이 감옥에서 25년의 짧은 인생을 마감했다. 2002년 12월 창이 국제공항에서 헤로인 소지 혐의로 붙잡혀 2004년 3월 사형 선고를 받은 지 20개월여 만이다. 그의 죽음은 같은 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사형된 케네스 리 보이드(57) 씨의 죽음과 맞물려 사형제도를 둘러싼 지구촌의 찬반 논란을 뜨겁게 달궜다. 1988년 전처와 장인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된 보이드 씨는 미국의 1000번째 사형 대상자였다.》

반 씨는 1980년 8월 태국의 난민 수용소에서 쌍둥이 동생 꼬아 씨와 함께 태어났다. 그 몇 개월 전 어머니 응우옌낌 씨는 공산화된 베트남을 탈출해 ‘보트 피플’로 바다를 떠돌다 태국 수용소로 흘러들어 왔다. 당시 낌 씨는 임신 중이었고 이혼까지 한 상태였다.

1981년 낌 씨와 쌍둥이는 호주 퍼스로 가 새 삶을 시작했다. 3년 뒤에는 멜버른으로 이주했다. 1987년 낌 씨는 재혼했지만 의붓아버지가 쌍둥이에게 매질을 하는 바람에 다시 이혼했다. 이후 쌍둥이는 아버지 없이 어머니의 벌이로 힘겹게 생계를 꾸려 나갔다.

어릴 때 항상 붙어 다니던 쌍둥이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각기 다른 성향을 보였다. 반 씨는 점잖고 예의바르면서 책임감이 강했다. 반면 꼬아 씨는 반항기를 보이면서 비행을 저질렀다. 급기야 마약에까지 손을 대 3만 달러(약 3000만 원)의 마약 빚을 졌다.

반 씨도 행로가 순탄하지 못해 학비가 모자라 대학을 중퇴하고 친구와 벌였던 인터넷 사업도 1990년대 말에 망해 빚만 잔뜩 지고 말았다. 영업사원 일도 오래하지 못했다. 이러다 보니 성격마저 점차 비뚤어졌다.

2002년 중반 반 씨는 호주 마약조직으로부터 단숨에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제안을 받았다. 캄보디아에서 헤로인을 받아다 호주로 반입해 달라는 것이었다. 마약 빚에 몰려 있던 동생을 보다 못해 반 씨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반 씨는 캄보디아에서 받은 마약을 몸에 두른 채 싱가포르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다 적발됐다. 하필 싱가포르는 마약사범에게 가혹한 형벌을 부과하기로 유명한 나라였다. 1999년 이후 마약 관련 범죄로 처형된 사람만 100명이 넘었다.

더구나 그가 지녔던 헤로인 약 400g은 싱가포르에서 사형을 언도하는 마약 기준량의 25배. 시중에 팔면 100만 달러를 벌 수 있는 분량이다. 싱가포르는 호주 정부의 막판 선처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일 리셴룽(李顯龍) 총리는 “사형 집행 결정을 변경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2일 오전 6시 사형 집행 시점에 호주 주요 도시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촛불집회를 벌였고 성당에서는 25차례 종이 울렸다. 미국에서도 사형 반대자들이 1일 저녁부터 롤리 교도소 밖에서 철야로 촛불집회를 갖고 당국의 사형 강행을 비난했다.

이 진 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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