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동아시아 외교 재앙’ 고이즈미 신사참배

  • 입력 2005년 10월 4일 03시 05분


코멘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靖國)신사의 가을 대제(大祭)가 열리는 17일을 전후해 다시 참배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최근 오사카고등법원이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헌법 위반”이라고 판결하자 그는 “왜 위헌인가. 총리의 직무로 간 것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내 (참배) 실적을 보면 앞으로의 행동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참배 강행 의사를 밝혔다. 그의 참배 강행은 가뜩이나 앙금이 쌓여 있는 한국과의 관계, 그리고 수년째 정상회담조차 열지 못하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를 더 심각하게 꼬이게 할 것이다.

한국과 중국이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반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전범(戰犯) 중에서도 A급 14명의 위패가 있는 신사를 총리가 참배하는 것은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것이고, 침략과 식민 지배를 당한 이웃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총리 측은 “웬 내정간섭이냐”고 되받고 있지만 바로 이런 태도에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우선 지난날 일본이 저지른 가해(加害)의 역사에 대한 반성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런 일본이라면 과거사의 잘못을 되풀이할 소지가 남아 있는 것이다. 더구나 자국 고등법원의 위헌 판결까지 버젓이 짓밟아 버리는 ‘무법자’ 같은 일본 총리가 이웃 나라들에 대해서는 또 어떤 행동을 할지 신뢰할 수가 없다.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달 총선 압승으로 국내 정치 기반을 강화했고, 미국에 철저히 추종함으로써 미국의 후원도 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아시아 경시(輕視)는 역사적 피해국인 이웃 나라들로서는 참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를 비롯한 숱한 일본 정치인들이 참배를 말리고, 연립여당의 일원인 공명당까지 반대하는 것도 이런 점에 대한 우려의 표시일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참배를 강행한다면 그는 동아시아의 ‘외교 재앙’을 낳는 일본 지도자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참배 자제를 거듭 촉구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