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박원재]의원 아내, 남편 의원

  • 입력 2005년 8월 1일 03시 10분


코멘트
일본 집권 자민당의 쓰루호 요스케(鶴保庸介·38) 참의원 의원은 요즘 주위에서 “고민이 많겠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우정 민영화 법안 표결이 이달 초 실시되면 ‘사랑하는 아내’와 ‘정치 신의로 맺어진 파벌 보스’ 중 어느 쪽을 택할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쓰루호 의원은 같은 당 노다 세이코(野田聖子·44) 중의원 의원의 남편. 6년의 나이차에 소속 파벌은 다르지만 둘 사이의 금실은 좋기로 유명하다.

1998년 우정상에 발탁돼 사상 최연소 각료 기록을 세운 노다 의원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밀어붙이는 우정 민영화를 앞장서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쓰루호 의원의 파벌은 일찌감치 지지 방침을 굳힌 상태. 자민당 참의원 의원 114명 중 18명 이상이 반대표를 던지면 법안은 부결되고 일본 정계는 엄청난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쓰루호 의원을 둘러싼 양측의 설득전은 치열하다. 그는 “정치를 시작한 뒤 이렇게 난감하기는 처음”이라며 “아내와 파벌을 모두 만족시킬 묘안이 나오지 않아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중의원 3선, 참의원 재선 경력의 중진인 다나카 나오키(田中直紀·65) 참의원 의원도 쓰루호 의원과 똑같은 처지다.

그는 현 정권 초기에 외상을 지냈다가 탈당한 ‘여걸’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61) 중의원 의원의 남편. 고이즈미 총리와 사이가 틀어진 아내가 우정 민영화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터라 곤혹스럽다.

국회에서 쓰루호 의원과 다나카 의원이 얘기라도 나누려면 취재진이 우르르 몰려드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두 의원의 대화 자체가 흥미로울 뿐 아니라 이들이 행동 통일에 나설 경우 전체 판세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이들 두 의원의 애환은 남편보다는 부인 쪽이 정치적으로 거물이라는 점에서 호사가들의 주목을 더 받고 있는 듯하다.

일본의 여성 우위 현상은 스포츠 무대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일본 여자 마라톤은 2000년 시드니,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2연패했다. 아무리 돈을 쏟아 부어도 정상과는 거리가 먼 남자 축구에 비해 여자 축구는 강호 북한을 누르고 중국에 도전장을 내밀 정도로 막강하다. 여성들의 종횡무진에 남성들이 기를 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해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류 열풍의 영향으로 일본의 젊은 여성들 중에는 한국 여성에게 ‘환상’을 갖는 이가 적지 않다. 회사원 가사이 지아키(笠井千晶·31) 씨는 “한국 드라마를 보면 여자들은 당차게 말하고 행동하지만, 남자들은 대체로 부드럽고 자상하게 그려진다”며 “남자에게 ‘대접받고 사는’ 한국 여자가 부럽다”고 말했다.

일본 여성은 결혼하면 법적으로 남자 쪽 성을 따라야 한다. 노다 의원처럼 사회생활을 하는 일부 여성이 자신의 성을 고수하는 예외도 있지만 부부에게 각자의 성을 허용하는 ‘부부 별성(別姓)제’ 법안은 좀처럼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언뜻 보아 일본에 비해 한국이 훨씬 앞서 있다고 생각하게 할 만한 대목이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 진출을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일본 쪽이 한수 위다. 행정 당국은 기혼 여성이 회사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보육원의 수준을 높이려 애쓰고, 육아휴직제를 확실하게 실시하는 등 여성의 사회활동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어느 쪽이 더 여성의 지위를 존중하고 사회참여를 보장하고 있는지 우열을 가리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인지 모른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여성들이 사회적 제약 없이 마음껏 자신의 뜻을 펴고 활동할 수 있는 사회가 경쟁력 있는 나라라는 점이다.

박원재 도쿄 특파원 parkw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