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야마교수 “9·11은 통치권 붕괴 보여줘”

  • 입력 2004년 7월 5일 19시 06분


저서 ‘역사의 종말’에서 “시장이 국가의 역할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존스홉킨스대 석좌교수가 이번에는 “우리의 생존은 강력한 국가에 달려있다”는 새로운 주장을 제기했다.

다음은 영국 가디언지 일요판인 옵서버 4일자에 실린 후쿠야마 교수의 기고문 요약.

레이건-대처 시대에는 국가의 역할을 줄이는 것이 제1과제였다. 그러나 이는 끝나가고 있으며 추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20세기 세계질서 혼란이 독일, 일본, 옛 소련 등 지나치게 강력한 국가들 때문이었다면 빈곤 난민 인권 에이즈 테러 등 오늘날의 문제는 약한 개발도상국들이 야기한 것이다.

‘국가의 범위(scope)’와 ‘국가의 힘(strength)’은 구별돼야 한다. ‘범위’는 국가 기능이 미치는 영역이고, ‘힘’은 정책이 현실적으로 이행되는 효율성이다. 범위는 팽창되면서 힘은 위험한 수준으로 약화될 수도 있다.

브라질 터키 멕시코 등은 ‘범위는 과도하고 힘은 약한’ 국가이고,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등은 ‘범위도 별로 없고 그나마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는’ 국가들이다. 옛 소련 붕괴 이후 생겨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언론인 체포나 정적 제거 등 ‘엉뚱한 영역’에서 효율적이다.

국가 영역을 줄이려는 신자유주의를 열정적으로 추구한 결과 핵심적인 정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데 필요한 ‘국가의 힘’마저 손상됐다.

러시아는 모든 경제를 정부가 통제하던 국가에서 세금도 제대로 못 걷는 나라로 변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조조정을 행한 많은 개도국은 핵심적인 국가기능을 잘라내 버리는 결과를 맞았다.

9·11테러가 보여준 사실은 빈곤 분쟁지역에서의 통치권 부재가 선진세계에 엄청난 안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중동, 남아시아 등에서의 통치권 붕괴는 극렬 이슬람 운동과 테러의 토양이 되고 있다.

국제사회 역시 새로운 제도를 필요로 한다. 유엔은 정통성이나 효율성 면에서 모두 허약하다. 유엔은 보스니아와 코소보 안정화를 담당했지만, 주민들이 자력으로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지는 못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정부가 ‘부(富)의 창조자’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무정부 세계가 확대되고 있다. 급진 이슬람 운동가들은 포로 참수 비디오를 유포하면서 기술 민주화를 만끽하고 있다.

이러한 공백상태를 메우는 것은 합법적으로 권력을 독점한 국가여야 한다. 우리는 ‘국가의 해체’ 못지않게 ‘국가의 재건’을 생각해야 한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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