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장 클로드 슈라키/美경제 거품이 걱정된다

  • 입력 2004년 5월 26일 18시 44분


최근 미국 경제지표들은 1990년대 주식시장의 거품이 꺼진 이후 생긴 경기침체를 미국 경제가 극복했음을 보여준다. 재정적자가 늘기는 했지만 최근 3년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느슨한 통화정책이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 성장하도록 한 일등공신이라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이에 따라 경제에 관한 한 ‘실수 없는 감독’이라는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의 명성은 다시 상한가를 치고 있다. FRB는 거품경제 붕괴 이후 재빠르고 결단력 있게 대응했다고 찬사를 받는다. 반대로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로화 지역이 불경기인데도 너무 조심스럽고 늦게 대응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하지만 경제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FRB는 1990년대 말 이자율을 지나치게 오랫동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해 가계부채를 통제 불능 상태로 만들었다는 반론도 있다. 2000년 이후에는 자산평가액을 현실화함으로써 금융 및 부동산시장에 ‘무분별한 풍요’의 장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받는다.

FRB는 1990년대 후반기 거품을 제거하는 데 실패했다. FRB는 정보기술(IT) 혁명이 미국의 생산성을 향상시켰기 때문에 거품을 제거하기가 어려웠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린스펀 의장은 당시 경제상황이 거품 상태인지 판단하기가 매우 어려웠고, 혹 거품으로 판단한다 해도 경제활동의 심각한 위축을 가져올 수 있는 거품 제거는 어렵다고 계속 주장해 왔다.

그러나 거품은 오래 부풀게 할수록 가계부채는 늘고, 결국 더 깊은 경기 하강 국면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렇다면 FRB가 소비를 살리기 위해 (명시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묵시적으로) 자산평가액을 올린 것은 바른 선택이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FRB가 이자율을 정할 때 고려하는 두 가지 원칙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첫째, 미국 경제는 IT 발전으로 인한 지속적인 생산성 향상에 힘입어 인플레 없이 성장 곡선의 최고점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소비는 가계의 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금융시장 상황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두 번째 원칙의 영향력이 더 컸다. 그린스펀 의장을 비롯한 미국의 통화정책 입안자들은 이자율을 기록적인 수준으로 낮춰 주식과 부동산 가격을 올리고, 그 결과 소비가 늘어나게 해 가계가 많은 빚을 지도록 했다. 미 행정부의 감세조치도 임금은 늘지 않는데도 소비를 부추기는 데 일조했다.

이런 전략은 아직까지 주효한 것으로 보이지만 지속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관건은 소비자가 자산평가와 부채 증가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고용과 수입이 늘어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럴 때에만 미국의 경제성장이 지속적으로 가능해진다.

FRB는 가계부채가 증가해도 주식과 부동산 가격 등 자산평가액 상승으로 가계의 부가 함께 증가하면 해롭지 않다고 해석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러한 부의 창조는 매우 인위적이다. 이 때문에 FRB가 최근 3년간 한 일은 거품이 터지지 않도록 또 다른 거품을 불어넣는 역할이었다는 견해가 나온다. 모건스탠리의 수석이코노미스트 스티븐 로치는 “FRB는 쉴 새 없이 거품을 불고 있다”고 지적한다.

장 클로드 슈라키 파리정치대학 교수

약력 △59세 국립 파리대학 경제학 박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제국 통화재무정책과장 △OECD 선임자문위원 △프랑스 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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