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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2월 16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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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서에는 ‘신랑 ○○○, 신부 □□□’라는 표현 대신 ‘제1신청자 ○○○, 제2신청자 □□□’라고 써있다. 주말 특별근무를 한 시청 직원은 “시간과 사람이 부족하다”면서 “줄을 서있는 사람들이 결혼할 때까지 (증명서 발급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에서 발급하는 결혼증명서는 주정부나 법원이 승인하지 않으면 효력이 없다. 결혼에 따른 혜택이 연방이나 주정부에서 주어지기 때문. 1975년 애리조나주와 콜로라도주의 카운티에서도 증명서를 발급했으나 ‘무효’가 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샌프란시스코시의 증명서 발급에 반대하는 측은 법원의 무효선언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 ▼관련기사▼ |
| - ‘동성결혼’ 네덜란드 2001년 첫 합법화 |
1980년대 초만 해도 미국에선 20여개 주가 동성간 성관계에 최고 사형까지 내릴 수 있는 ‘소도미법’을 채택하고 있었다. 그러나 작년 6월 텍사스주의 소도미법에 대해 연방대법원이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 뒤 8개월 만에 샌프란시스코시에서 공식 결혼증명서가 나온 것.
주로는 처음으로 매사추세츠주가 주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5월 중순 공식적인 동성간 결혼을 인정할 예정이다. 매사추세츠주의 휴양지 케이프코드의 일부 교회는 동성결혼 예식을 치러주겠다는 광고를 내고 고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에 대해 주 의회가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라고 정의하는 주 헌법 개정안을 제출해 3월 11일 심의가 시작된다. 그렇지만 이 개정안이 채택돼도 2006년에야 효력이 발생하므로 그 사이에 수많은 동성 결혼이 합법적으로 인정될 상황이다.
이 문제는 빌 프리스트 미 상원 공화당 대표가 표현한대로 대선 바람을 타고 ‘들불처럼’ 정치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결혼이란 남성과 여성간의 신성한 행위”라면서 주정부가 왈가왈부하지 못하도록 주 헌법보다 상위법인 연방헌법에 결혼의 정의를 분명히 하겠다는 태세다.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존 케리 상원의원 등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식 결혼’이 아니라 ‘시민 결합(Civil Union)’이라는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민 결합’ 개념은 이미 매사추세츠주 대법원에 의해 거부됐고 동성애자들로부터도 외면당하고 있다.
이 현안에 대한 미국인들의 견해는 미묘하다. 9일 전국 814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결과 ‘주에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법률을 제정하는데 반대한다’는 의견이 60%로 찬성(31%)보다 훨씬 많았다. 그러나 동성 결혼을 금지하기 위해 연방헌법을 수정하려는 부시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는 반대(49%)가 찬성(42%)보다 많았다. ‘동성간 결혼을 인정해야 하지만 일단 우리 동네에선 싫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동성 결혼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움직임을 바라보던 멕시코의 멕시코시티에서 동성애자 2700쌍이 15일 결혼식을 올렸다. 호주 멜버른에서도 이날 300여쌍이 합동결혼식을 올렸다. 두 나라는 아직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지 않은 상태다.
뉴욕=홍권희특파원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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