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7회의 쟁점]“弱달러 막아라” “어림없다” 격돌 예고

  • 입력 2004년 2월 4일 19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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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7일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서방선진7개국(G7)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 국제 금융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회의의 의제는 △환율정책 △세계경제 활성화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자금 지원 등. 하지만 미국 달러화 약세를 저지하기 위한 공동전선 구축이 가능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전문가들은 G7 내부의 견해차가 어느 때보다 큰 만큼 전례 없는 격론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G7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달러화 가치가 더 떨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면서 각국 통화는 달러화에 대해 일제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경향은 대미(對美)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해 9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G7이 ‘보다 유연한 외환정책’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직후 달러화 가치가 급락해 세계 금융시장이 홍역을 치른 터라 이번엔 어떤 발표를 내놓을지 주목을 끌고 있다.

▽‘달러약세 저지’ 벼르는 일본과 EU=일본과 유럽연합(EU)은 “미국 정부로부터 달러화 약세를 방관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내겠다”며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엔화 강세(달러화 약세)를 저지하기 위해 20조엔 이상의 시장 개입을 단행했다. 올 1월에는 개입 규모가 7조엔을 넘어 월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달러당 115엔선이던 엔화 가치는 최근 105엔선까지 상승하는 등 계속 오름세.

일본이 인위적인 시장 개입이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개입에 나선 것은 엔화 강세로 수출이 부진하면 모처럼의 경기회복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만의 단독 개입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 드러난 만큼 국제 공조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U는 두바이 회의 때만 해도 느긋한 입장이었지만 달러화 가치의 하락 속도가 갈수록 빨라질 조짐을 보이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아직 시장 개입에는 나서지 않았지만 기업들은 유럽중앙은행(ECB)을 향해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EU는 일본에 대해서도 “시장 개입으로 외환시장 질서를 교란해 유로화 가치가 높아지는 피해를 봤다”며 거리를 두고 있다.

▽완강한 미국=달러화 약세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무역수지와 재정수지 적자)가 확대된 탓이 크지만 미 정부가 은근히 조장한 측면도 있다.

존 스노 미 재무장관은 3일 “환율은 공개시장에서 유연성 있게 결정돼야 한다”고 말해 달러화 약세 기조를 바꿀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올해 11월 대선을 앞둔 조지 W 부시 행정부로서는 전통적 지지기반인 산업계를 의식해 ‘약한 달러’ 정책을 포기할 수 없는 처지. 수출이 호조를 보이면서 지난해 10∼12월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전기보다 4.0% 늘어 견실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美-日 그래도 서로 돕는다▼

일본 기업들은 달러화 약세에 대해 “수출 채산성을 맞출 수 없다”며 아우성이지만 이 과정에서 미국과 일본은 상대방 경제를 지탱해 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일본 외환당국은 엔화를 팔아 달러를 사들이는 시장 개입으로 확보한 달러를 미국 채권시장에 투자해 미국의 장기금리를 안정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 일본에서 들어온 자금 덕택에 미국 경기가 호조를 보이면서 자금 여유가 생긴 미국의 투자자들은 도쿄증시의 주식 매입에 나서 일본의 주가 상승을 돕는다.

이런 선순환 구조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도 이뤄지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난해 1∼11월 미국의 재정적자는 이라크전쟁 전비 지출과 대규모 감세 등의 영향으로 4000억달러에 달했다. 미국 정부는 적자를 메우기 위해 6700억달러 규모의 국채를 신규 발행했다.

미국 국채를 사들인 대표적 ‘큰손’은 일본 정부. 지난해 1년간 20조엔 이상의 외환시장 개입으로 사들인 달러를 미국 국채를 사는 데 썼다. 한국과 중국도 가세했다.

아사히신문은 동아시아 각국이 미국 국채를 구입한 것이 미국 장기금리를 4%대로 안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경기가 살아나자 미국 내 투자자들은 지난해 1∼11월 중 도쿄증시에서 4조5000억엔(약 45조원)을 순매수했다. 일본 기업의 보유 주식 처분에도 불구하고 닛케이평균주가가 1년간 25% 상승한 것은 미국 투자자금이 가세한 영향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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