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고성장 신화 뒤엔 `민영화 선봉장` 있었다

  • 입력 2004년 1월 12일 18시 47분


아룬 슈리 인도 민영화추진부 장관(62·사진)이 2001년 3월 대표적 공기업인 바라트 알루미늄 사를 매각할 때의 일화.

매각에 반대한 직원들은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그러나 슈리 장관은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하라. 하지만 나는 절대 협상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직원들은 결국 슈리 장관의 결심이 얼마나 단호한지 깨닫고는 농성을 풀었다.

인도 경제가 지난해 7% 성장하는 등 전례 없이 활력을 보이는 것은 부실 공기업을 매각한 정책이 원동력이 됐다.

이 정책의 선봉장인 슈리 장관은 타협을 거부하며 정책을 강행해 ‘민영화의 차르(제정 러시아시대의 황제)’라는 별명까지 얻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11일 전했다.

그는 2000년 민영화추진부 장관이 되자마자 공기업들을 직접 방문했다.

“14년간 비료를 1kg도 생산하지 않은 비료공장, 투숙률이 3%에 불과한 호텔이 있는가 하면, 어떤 호텔에는 화장장과 공동묘지까지 갖추고 있었다. 직원들은 전부 놀고 있고….”

그는 인도가 독립 후 사회주의식 공기업을 양산하는 바람에 비효율이 생겨났다고 진단했다. 또 정부가 지나치게 많은 인가권을 갖고 있어 정치인과 관리들이 이런 규제를 이용해 공기업의 이권에 개입하는 부패가 만연했다고 분석했다.

슈리 장관은 공기업을 민간자본과 외국자본에 매각하기 시작했다. 정관계의 반발은 격렬했다. 한 야당 의원은 “슈리 장관의 계획이 물 속에 빠져 죽는 걸 보고 싶다”며 저주했고, 좌파 지식인들은 미국 유학, 세계은행 근무 경력이 있는 그를 “서방의 간첩”이라고 몰아세웠다.

그러나 그는 “기업 효율을 높여야 가난한 사람들의 일자리가 늘어난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뚝심만으로 밀어붙인 것은 아니었다. 기자 출신답게 민영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칼럼을 줄기차게 쓰고, 다양한 지지 확보 전략도 구사했다.

인디라 간디 전 총리 가문이 창업한 국민차 회사 ‘마루티 우디오그’를 일본 스즈키에 매각하려는 계획이 정계의 강한 반발에 부닥쳤을 때는 이 회사의 주식 절반을 민간에 공개해 광범한 지지를 끌어내기도 했다. 최근 3년간 그는 34개의 공기업을 매각했다. 인도 정부가 30년간 매각한 공기업보다 많다. 반대파들도 이제 그의 생각이 옳았다고 인정한다. 그는 여당과 내각의 신임을 받아 지난해부터 통신장관까지 겸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야당인 공산당과 의회당도 지금은 자기 당이 장악한 지방정부 소유의 공기업 매각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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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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