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11·9총선 이후]<上>양당구도 정착

  • 입력 2003년 11월 10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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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일본 중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 등 연립여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재집권에 성공했다. 평화헌법 수정을 각각 공약으로 내건 자민당과 민주당의 양당체제가 정착되면서 일본사회의 우경화는 더욱 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진보정당의 위축은 다양성을 존중해 온 일본 정치가 획일화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주는 추세의 반영이기도 하다. 고도성장기를 풍미했던 원로 정치인들이 물러나고 전후 세대가 새 주역으로 떠오르는 현상도 뚜렷하다. 일본 정치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3회 시리즈로 조망해 본다.》

일본 중의원 총선거 개표가 진행된 9일 밤과 10일 새벽. 집권 자민당 간부들의 표정은 수시로 바뀌었다. 단독 과반수를 낙관하며 느긋해하던 분위기는 초반 개표 및 출구조사 결과 233석을 밑돌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술렁임으로 바뀌었다.

233석은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가 이끈 2000년 6월 총선에서 자민당이 획득한 의석. 한 정치평론가는 “그때보다 의석이 줄면 당 총재인 고이즈미 총리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될 것”이라며 실각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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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간사장은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민주당은 다른 정파와 연계해 정권을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 개표 결과 자민당의 의석은 237석. 단독 과반수(241석)에는 4석이 모자라지만 지난 선거보다는 4석이 늘었다. 공명당(34석)과 보수신당(4석)을 합한 여권 전체 의석은 275석으로 ‘절대 안정 다수’가 됐다. 고이즈미 총리는 ‘계속 집권’을 선언했고 민주당 집행부는 정권 교체의 꿈을 접은 채 당의 위상을 끌어올린 것에 만족했다.

일본 언론은 “이번 선거를 통해 명실상부한 양당체제가 전후 최초로 일본 정계에 정착됐다”면서 “고이즈미 총리가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정권 기반은 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흔들리는 고이즈미 정권 기반=고이즈미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정권 선택’을 놓고 치러진 선거에서 여권이 안정 의석을 확보한 것은 국민의 신임을 받았다는 뜻”이라며 내각 진용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도로공단과 우정사업 민영화 등 구조개혁을 계속할 것이며 이라크 파병도 예정된 순서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보수신당이 이날 오후 아예 당을 해체하고 자민당에 합류키로 함으로써 고이즈미 총리는 선거 부진을 다소나마 만회할 수 있게 됐다. 자민당은 탈당한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전 간사장 등 무소속 3명을 영입한 데 이어 보수신당의 합류로 의석이 244석으로 늘면서 단독과반수까지 확보했다.

하지만 당 내에서는 ‘대통령형 총리’로 불릴 정도로 독주해 온 고이즈미 총리의 당 장악력이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금까지 이해관계가 다른 각 파벌이 고이즈미 집권에 동의한 것은 그의 개인적 인기를 선거에 활용하려는 의도였는데 총선 결과 ‘고이즈미 간판’의 효용성이 기대에 크게 못 미쳤기 때문.

아사히신문은 “선거의 얼굴인 고이즈미 총리의 가치가 흔들려 정국운영의 주도권을 빼앗길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일본 최대 야당의 출현=민주당이 확보한 177석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 야당 사상 최대 규모. 민주당은 보수성향인 자유당과의 합당으로 지지층을 넓힌 데다 고속도로 무료화 등 유권자들의 시선을 끄는 정책개발이 20, 30대 젊은층에게 어필하면서 40석을 늘렸다. 기본적으로 우익성향인 점은 자민당과 비슷하지만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등 주요 현안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차별화에 주력해 왔다.

민주당은 도쿄도 내의 25개 선거구 중 12곳에서 당선된 것을 비롯해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에서 강세를 보였다. 특히 유권자가 선호 정당에 투표하는 비례대표 선거에서는 72석으로 자민당(69석)을 앞서는 저력을 과시했다.

이렇다 할 스타가 없는 민주당은 두꺼운 선거공약 책자를 유권자에게 배포하고 예비내각을 발표하는 등 정권 선택 선거로 몰고 가 자민당 장기집권에 싫증을 느낀 부동층의 표를 끌어 모으는 데 성공했다.

고이즈미 총리도 “이번 선거에서는 야당이 정권을 잡을 수 있도록 키워줘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양당체제 구축을 현실로 받아들였다.

▽위기의 진보정당=거대 보수 정당으로 표가 쏠리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특히 군소 진보 정당은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공산당은 지난 선거에 이어 이번에도 소선거구에서 단 1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했고 비례대표 의석도 20석에서 9석으로 줄었다. 사민당 의석도 18석에서 6석으로 급감했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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