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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10월 10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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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열린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공식 개막식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 왼쪽부터 폴커 노이만 조직위원장, 크리스티나 바이스 독일 문화부장관, 갈리나 카렐로바 러시아 총리서리, 롤란드 코흐 헤센주 총리, 페트라 로트 프랑크푸르트 시장.프랑크푸르트도서전 인터넷사이트
○ 사람이야기, 논픽션의 강세
조지 W 부시, 체 게바라, 앨프리드 히치콕, 라이트 형제, 알렉산더 대왕, 무하마드 알리, 마오쩌둥(毛澤東), 존 F 케네디….
이번 도서전에 전시된 책들에서 다룬 인물을 ‘출연빈도’ 순서로 꼽는다고 가정했을 때 상위에 오를 만한 인물들이다.
“영국이나 미국 시장의 경우 픽션보다는 논픽션이 강세지만 딱딱한 것보다는 가슴에 호소하는 소프트 논픽션을 선호한다. 자연히 전기, 자서전 등 부담을 덜 주는 인물이야기가 주종을 이룰 수밖에 없다.”(워너북 영국 판권담당 앤디 하인)
뉴스메이커인 미국 부시 대통령을 놓고 내년에도 지지, 반대 양쪽 진영의 관점에서 쓴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질 예정이다. 미술, 사진 전문출판사인 파이돈은 케네디 대통령의 어린 시절부터 1963년 11월 22일 암살당하기 직전까지의 사진을 엄선해 사진집 형식의 전기를 11월에 펴낸다.
체 게바라 열풍도 몇 년째 식지 않고 있다. 60, 70년대의 혁명운동을 모르는 세대에 저항의 아이콘으로 부활했다는 분석이다. 권투선수 알리나 마오쩌둥도 기존 체제에 저항하며 새로운 전설이 된 ‘문화적 상징’으로 분류될 수 있다.
보통사람들의 특별한 삶을 다룬 책들도 많은 출판사들이 눈독을 들이는 아이템. 펭귄 계열 바이킹사가 내놓은 ‘Running in the world’는 가족들을 모두 잃은 뒤 달리기로 삶을 복구해 가는 보통사람의 실화를 담아 주목받고 있다.
○ 책, 읽는 것인가, 보는 것인가
이탈리아 출판사 ‘아트메디아 에디지오네’가 도서전에 내놓은 화집 ‘모던아트:혁명과 회화들’은 무게가 32kg. 책을 펼쳤을 때 가로 세로 크기는 101cm×71cm로 가장 큰 책 기록을 경신했다. 1000부 한정 생산에 권당 가격은 6000달러.
독일 타센출판사가 알리의 삶을 사진과 글로 회고한 ‘Greatest Of All Time’도 펼쳤을 때 가로 세로가 100cm×50cm에 무게가 34kg이다. 책에 담긴 사진만 1만장, 총페이지는 800쪽. 주문판매로 1만부 한정 생산되며 초판 1000부에는 알리의 자필사인이 담긴다.
책이 크고 무겁고 비싸지는 것은 출판이 ‘비주얼 이미지 시대’에 대응하는 적극적인 생존법으로 해석된다. 텔레비전이나 스크린, 컴퓨터 모니터가 따라오거나 흉내낼 수 없는 고유의 방법을 통해 책은 ‘읽는 것이 아닌 보는 것’으로 변신하고 있다.
알리의 전기나 모던아트 화집을 주문한 사람들은 이미 그림처럼 책에 대해 ‘소장’이라는 개념을 갖는다. 따라서 책 자체에 고급스러움을 부여하는 것이 이 책의 독자들에게는 적절한 마케팅 방법이라는 분석이다.
아울러 텍스트 중심의 인문사회과학 서적에서도 ‘보는 책’으로서의 기능 강화는 가속화될 전망이다. 특히 사진이 현대미술의 인기 장르로 자리매김되면서, 사진이 문자텍스트의 보조물이 아니라 활자와 동등한 가치가 있는 정보로 다뤄지는 책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프랑크푸르트=정은령기자ryung@donga.com
1976년부터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조직위원회는 매년 이 도서전에 한 나라를 주빈(主賓)국으로 초대해 그 나라가 자국 문화를 독일과 세계에 알릴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다. 아시아권에서는 86년 인도, 90년 일본이 이 영광을 차지했고, 올해에는 러시아가 선정됐다.
올 2월 9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를 베를린에서 만나 ‘독일에서의 러시아의 해’ 행사 절정에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프로그램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러시아 정부는 이 행사에 큰 관심을 갖고 열성을 쏟고 있다.
▽러시아와 독일=도서전 주빈국이 이번처럼 독일 국민의 관심사가 된 일은 없다. 독일과 러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적국(敵國)이었던 역사적 경험 등으로 말미암아 서로에게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민족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빈국 러시아의 문학은 독일인에게 환영받고 있다. 이번에 선보인 많은 문학작품 중 특히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신판은 독일인에게 극찬을 받고 있다. 작품의 무대가 되는 페테르부르크나 작품 속 사람들에게 독일인들이 동질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문화를 널리 알리는 다채로운 행사들=우선 이번 도서전에 200개의 출판사와 100명의 문인이 참가하고 있다. 또 도서전 개막일인 7일 오후 프랑크푸르트 시내 오페라극장에서는 러시아의 전통음악과 비발디 등 근·현대 음악을 재해석한 연주회들이 열렸고, 볼쇼이극장 발레단의 춤 공연도 선보였다. 프랑크푸르트 고미술박물관 등 시내 11개 박물관에서는 러시아와 관련한 각종 문화전시회가 열리고 있으며, 9월부터 2004년 2월까지는 영화박물관에서 ‘러시아 국제필름페스티벌’이 진행되고 있다.
▽러시아관=도서전시장 제5전시장 1층의 러시아출판도서협회관이 대표 전시장이며 150개 출판사가 그 주위에 단독 부스를 내 둘러서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활약하는 유명 설치미술가가 설계한 러시아 단독관 안에는 러시아에서 출판된 책 2734종이 전시돼 있다. 책장 양 옆으로 늘어선 ‘독일은 우리 러시아에 무엇을 기대하는가?’란 제목의 화가 안드레이 드미트리의 그림 전시회는 독일 국민이 냉전시대부터 지니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두려움에 직설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이기도 하다. 전시장 ‘포럼’에서는 30분 간격으로 이번 도서전에 참가한 러시아 문인 100명이 ‘작품낭독, 저자와의 대화 및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도서전 4전시관 앞 실내광장에서는 러시아 영화가 도서전 기간 내내 상영되고 있다. 의상쇼까지 포함해 러시아가 이번 도서전을 위해 준비한 특별문화행사는 총 150여개다.
김영자 독일 레겐스부르크대 교수
▼브라질 작가 코엘료 인터뷰▼

최근 신작소설 ‘11분(11minutes)’을 내놓은 브라질 출신의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56·사진)가 독자 사인회를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찾았다. 세계적으로 2000만부 이상이 팔린 출세작 ‘연금술사’(1987년)나 ‘피에트라 강가에 앉아 나는 울었노라’(1994년) 등을 통해 그는 신비주의적 색채를 견지하면서도 ‘인생의 참된 진리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신작에서는 ‘성애(性愛)’ ‘성적 정체성’의 문제에 골몰했다.
8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바에서 작품설명회를 가진 코엘료를 만났다. 보사노바 등을 연주하는 밴드의 음악 사이로 코엘료는 “섹슈얼리티야말로 21세기 인간의 가치관을 조명하는 핵심적 화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까지의 작품들과 사뭇 다른 데요….
“그렇지 않아요. 마치 신과 맞닥뜨리는 것 같던 지금까지의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하며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다룬 것일 뿐입니다. 인간은 오랜 시간 영혼과 몸이 분리된 사랑을 해 왔어요. 그걸 극복하고 양자가 합치된 사랑을 하는 것이 ‘궁극’에 이르는 길이라는 게 제가 하고 싶은 얘기였습니다.”
‘11분’에서는 사랑을 믿지 않는 창녀가 한 화가를 만나면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책 제목은 남녀의 평균 섹스 시간을 가리킨다.
―신작에서 자신의 성적인 경험까지 드러냈다고 강조했는데, 독자에게 필요 없는 오해를 사는 것은 아닌가요.
“누군가(독자)와 진정으로 합일한다는 것은 위험을 나눈다는 의미죠.”
브라질에서 청년기까지 보낸 작가는 이제 파리 런던 등을 오가며 사는 ‘지구인’이 됐다.
“나는 브라질 출신 작가이고 브라질 말로 작업하지만 내 영혼은 얽매이지 않고 전 세계를 떠돕니다. 내 여행이 어디서 끝날 것이며 어느 곳을 향해 가는지는 나도 몰라요.”
프랑크푸르트=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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