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주지사 당선 슈워제네거 “근육대신 머리를 보여주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03년 10월 8일 19시 03분



오스트리아의 나치 당원이었던 구스타프 슈워제네거는 아들 아널드가 돈 많이 버는 축구선수가 되길 바랐다. 아널드가 태어난 산촌마을 그라츠는 전기가 들어오는 집이 손에 꼽을 정도로 가난했다. 아버지는 ‘선수가 되려면 근육을 키워야 한다’며 집 지하에 헬스기구를 갖다놓았다.
사춘기를 맞은 아널드는 집요하게 ‘몸 만들기’에 열중했다. 축구는 안 하고 쇳덩이에만 매달리는 아들을 나무라던 아버지는 지하 벽에 아들이 붙여놓은 미스터 유니버스의 사진을 보고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군에서 탱크를 몰던 아널드는 제대 후 첫 출전한 유럽 육체미 선수권대회에서 주니어 챔피언에 올랐다. 육체미는 그의 삶의 목표이자 수단이 됐다. 차례차례 국제대회를 석권한 그는 결국 약관 20세로 최연소 미스터 유니버스에 등극했다.



육체미로 유명세를 탄 그는 이듬해인 1968년 미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위스콘신대에서 경영학과 국제경제학을 전공한 뒤 부동산과 헬스기구 판매업으로 사업수완을 발휘했다. 독일어 악센트를 버리지 못한 아널드가 영화계에 입문한 것은 또 다른 모험이었다. 1970년 저예산 영화 ‘뉴욕의 헤라클레스’로 도전을 시작한 그는 1982년 ‘코난’으로 첫 히트작을 냈고 이어 1984년 ‘터미네이터’로 일약 세계적 배우로 떠올랐다.
1983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그는 세 번째 도전을 정계 진출로 삼았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집권 시절 건강증진·스포츠위원회 의장으로 선임돼 백악관의 스포츠정책에 관여한 경험도 있었다. 당시 아버지의 나치 부역혐의가 논란을 빚자 유대인 단체에 직접 아버지의 전력을 조사할 것을 요청해 논란을 잠재웠다.
지난해 캘리포니아에서 각급 학교의 방과 후 프로그램 재원 조달을 위한 ‘주민 발의 49’를 통과시키면서 정치력을 인정받았고, 현역 주지사 소환 캠페인에 탄력을 받아 드디어 공화당 후보로 주지사 선거에 나섰다.
골수 공화당원이었던 그의 ‘중도파’ 변신은 ‘근육만 있고 뇌는 없다’는 비판자들의 인신공격을 잘 비켜나갔다. 공화당 정책과는 거리가 있는 공격용 총기 소지 규제와 낙태 지지 등은 민주당 텃밭인 캘리포니아의 표심을 긁어모으는 데 일조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당선으로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은 1966년 로널드 레이건(당시 55세) 후보 이후 37년 만에 할리우드 배우 출신을 주지사로 선임했다.



그의 정치인생에 가장 큰 버팀목은 1987년 결혼한 아내 마리아 슈라이버. 정통 민주당 가문인 케네디가 출신으로 NBC TV에서 기자와 앵커를 했던 슈라이버는 선거전 막바지 남편의 성추행 혐의 폭로를 앞장서 막아냈다.
그의 마지막 도전은 캘리포니아 정부가 안고 있는 380억달러의 재정적자. 유권자들은 육중한 쇳덩이를 들어올렸던 그의 열정과 도전이 성공작으로 마무리될지 지켜보고 있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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