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모여" …“해산” 미국판 번개모임 ‘플래시몹’

  • 입력 2003년 7월 31일 17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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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열린 뉴욕의 네 번째 플래시몹 현장. 참가자들이 현장 지시에 따라 친구들에게 휴대전화로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 소호의 구두가게야”라고 말하고 있다. 사진제공=해피로봇(www.happyrobot.net)

지난달 16일 열린 뉴욕의 네 번째 플래시몹 현장. 참가자들이 현장 지시에 따라 친구들에게 휴대전화로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 소호의 구두가게야”라고 말하고 있다. 사진제공=해피로봇(www.happyrobot.net)

지난달 24일 오후 7시18분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의 한 언덕에 20∼40대의 남녀 300여명이 모였다. 정확히 3분 뒤 이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후 2분 간격으로 새소리를 흉내 내다가 “새 소리(bird noise)”라고 중얼거리더니 “여기 와서 자연을 만끽하라”고 외쳤다. 그리고 20초 동안 “자∼연(na∼ture)”이라고 화음을 넣어 부르고 환호성을 지른 뒤 곧바로 흩어졌다. 뉴욕에서 올해 5번째로 열린 ‘플래시몹(flash mob)’ 현장이었다.

●블러거 통해 유럽까지 확산

플래시몹은 e메일로 연락을 받고서 특정한 날과 시간, 미리 지정된 장소에 모여 채 10분이 안되는 시간에 주어진 행동을 하고는 재빨리 흩어지는 군중 또는 그런 현상을 일컫는 신조어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번개 모임’이지만 내용은 사뭇 다르다.

6월 뉴욕에서 처음 시작된 이래 댈러스,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내 도시로 퍼졌고 이탈리아 로마,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오스트리아 빈, 독일 뮌헨 등 유럽 각 도시로까지 번지고 있다.

플래시몹은 자신을 ‘뉴욕의 문화산업 종사자’라고만 밝힌 빌이라는 남성이 처음 시작했다. 그는 6월 초 어느 날 50명의 친구들에게 브로드웨이의 장신구점에 모이자고 e메일을 돌렸다. 그러나 이 시도는 사전에 경찰에 알려져 무산됐다.

이후 열흘에서 2주 간격으로 뉴욕 시내 곳곳에서 플래시몹이 벌어졌다. 방식은 간단했다. 빌은 친구들에게 플래시몹에 초청한다는 e메일을 보내고 친구들은 그것을 다른 친구들에게 포워딩(전달)했다. 장소의 사전 유출을 막기 위해 목적지 주변의 술집 서너 곳에서 1차로 모이도록 했다.

술집에 모인 사람들은 이미 인터넷 사이트 ‘타임존’의 시간에 자신의 시계 시간을 맞췄다. 이어 참가자들만 식별할 수 있는 특정 복장을 한 사람이 간단한 지시와 시행 및 해산 시간이 적힌 카드를 참가자들에게 돌린다. 참가자들은 그것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 다만 해산 시간은 엄중히 지켜져야 하며 흩어지는 방향도 일정하면 안 된다.

첫 모임이 좌절된 후 두 번째 플래시몹은 34번가에 있는 메이시백화점의 양탄자매장 앞에서 벌어졌다. 100여명의 참가자들은 ‘사랑의 양탄자’를 사러온 어떤 공동체 사람들인 것처럼 행동하다 곧 해산했다.

세 번째는 200여명이 파크애버뉴에 있는 하야트 호텔 로비 2층에 올라가 박자를 맞춰 15초 동안 박수를 친 다음 흩어졌다. 네 번째 집결지는 고급 부티크거리로 변모한 소호거리의 고급 신발가게였다. 250여명의 군중은 메릴랜드에서 온 관광객들로 행세하며 가게를 휘저은 뒤 곧 사라졌다.

빌이 주도한 뉴욕의 플래시몹은 블러거들의 소개로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알려졌다.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등 미국 내는 물론 센트럴파크의 ‘새소리 모임’이 열리던 날에는 이탈리아의 로마에서도 300여명이 대형 쇼핑몰에 들어가 없는 물건만 찾는 플래시몹을 벌였다.

플래시몹은 인터넷상의 어떤 이벤트에 응답하려고 그 사이트에 접속하는 사용자가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인 ‘플래시 크라우드(flash crowd)’와 일정한 리더없이 e메일이나 휴대전화로 모인, 뜻을 같이 하는 군중을 일컫는 ‘스마트몹(smart mob)’의 합성어. 인터넷 미디어인 ‘치즈비키니’(www.cheesebikini.com)가 이 현상을 소개하며 '플래시몹‘이라는 신조어를 붙였다.

●도시의 詩? 신 사회운동?

스마트몹은 1999년 미 시애틀 WTO 회의 반대시위나 2000년 필리핀 에스트라다 대통령 퇴진요구 시위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플래시몹에는 이런 종류의 ‘무거운’ 목적이나 의미가 없다는 게 차이점. 한 참가자는 “뉴욕을 장난감 삼아 쓴 도시의 시(詩)”라고 표현했다.

그저 장난이라고 무시하는 사람도 있고 사회운동의 최첨단이라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행위예술의 일종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센트럴파크에서 열린 플래시몹에 참가한 30대 여성 직장인은 “모든 가치를 부정하는 다다이즘의 진수”라고 말하기도 했다.

창시자 빌은 인터넷언론 ‘더저널뉴스’(www.thejournalnews.com)와의 인터뷰에서 “어디를 가나 질서에 얽매인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어떤 행위에 참가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지금이야 재미있지만 사람들이 더 모이게 되면 곧 싸움이 벌어지거나 폭동으로 번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견해도 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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