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영어-피아노 배우러 학원 갈 필요 없어요”

  • 입력 2003년 5월 26일 17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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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모스크바의 930학교 학생들이 방과 후 특기적성시간을 이용해 직접 만든 전통의상을 입고 패션쇼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모스크바=홍성철기자
러시아 모스크바의 930학교 학생들이 방과 후 특기적성시간을 이용해 직접 만든 전통의상을 입고 패션쇼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모스크바=홍성철기자
●러시아 초중고교 특기적성교육 현장

15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930학교 강당. 점심시간이 지난 뒤 30여명의 남녀학생이 지도교사와 함께 무대에서 러시아 전통 의상쇼 공연 준비에 몰두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의상이 유행하던 시대와 용도에 대한 사회자의 설명에 따라 음악에 맞춰 무대를 사뿐사뿐 걸으며 자태를 뽐냈다.

챙이 넓은 모자가 딸린 우아한 귀족풍의 드레스를 입은 여학생도 있고 러시아 전통건물 양식이 그려진 간소복 차림의 학생도 보였다.

이날 무대에 등장한 전통의상과 소품들은 모두 학생들이 방과 후 특별활동 시간을 이용해 교사와 함께 직접 만든 것. 전문디자이너가 만든 작품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의상들은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8학년 예브게니야 세르게예브나(14)는 “정규수업이 끝난 뒤 동료들과 함께 디자인과 바느질을 하며 옷을 만들었다”며 “직접 만든 옷을 입고 공연 준비를 하는 시간이 학교생활 중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지도교사인 무트리야코바 나타샤는 “학생들은 교내 20여개의 특별활동을 통해 소질과 적성을 계발하고 자연스럽게 인성을 기른다”며 “그중에서도 전통의상 제작은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다”고 자랑했다.

인근 1405학교는 발레교육 특성화 지정학교다. 1학년부터 11학년까지 전교생이 165명에 불과한 이 ‘미니학교’에서는 모든 학생이 입학부터 졸업 때까지 의무적으로 발레를 배워야 한다.

이 학교 역시 발레전문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발레수업은 정규수업이 끝난 이후에 이뤄진다.

그러나 학생들은 국내외의 각종 무용경연대회에서 입상할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로 초청공연을 떠날 정도로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러시아의 초중고교는 방과 후 특기적성교육이 매우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학교마다 특성과 실정에 맞는 특별활동교육을 한 가지 정도 실시하고 있고 정부도 특성화학교를 지정해 적극 지원하고 있다. 학교에서 예체능을 비롯한 각종 특기적성교육이 집중적으로 실시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별도로 사설학원에 다닐 필요가 없다.

이런 교육이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모스크바를 비롯한 러시아 전역에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학교수업을 마치고 이용할 수 있는 각종 특성화교육시설이 매우 많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

모스크바 시내에 있는 ‘청소년 창의력 개발센터’는 그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시설이 훌륭한 곳으로 꼽힌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지대가 높은 ‘참새언덕’에 자리한 이곳에는 하루에 2000∼3000명의 학생들이 찾아와 각종 시설과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다.

5∼17세의 어린이 청소년이면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며 일부 체육시설 이용료와 별도의 개인지도비를 제외하고는 학생들이 비용을 전혀 부담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활동하는 동아리 수가 18개 분야에 걸쳐 1500개가 넘고 운영 중인 교육프로그램도 200여개나 된다. 교육 분야는 러시아가 자랑하는 우주천문학에서부터 발레 음악 미술 체육 등 각종 예체능과 외국어 교육까지 다양하다. 직원 1000여명 가운데 600명은 전직 운동선수나 예술가 등 전문교사로 구성돼 있다.

교사들이 상주하며 수시로 찾아오는 학생들을 지도하기 때문에 수업이 집중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도 장점 가운데 하나다.

국제협력부 책임자인 마리아 아브라보브나는 “이곳에서는 배우려는 학생이 1명이라도 있으면 언제든지 수업이 실시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교사 1명이 학생 2, 3명과 함께 열심히 토론하며 공부에 몰두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특히 방학 중에는 러시아 전역을 비롯해 인근 독립국가연합 소속 국가 등 외국으로 현장학습을 떠나기도 한다.

우주천문교육프로그램은 이곳의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 우주천문관을 방문하자 담당교사가 직접 안내했다.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도록 설계된 어두운 밀실에서는 계절별, 지역별로 변하는 천체의 모습을 바라보며 우주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이곳에서 1년 동안 공부해 모스크바시 천문학경연대회에서 상을 받았다는 6학년 니콜라이는 태양 둘레를 도는 목성을 망원경으로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며 “다음에는 화성을 찍을 계획”이라고 자랑했다.

빅토르 소보레프 부원장은 “‘재능 없는 아이는 없다’는 전제 아래 학생들의 잠재된 자아와 창의력을 실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며 “장애학생을 위한 교육프로그램과 축제도 다양하게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스크바=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1405학교 루드밀라 교장

“예능교육은 학생들의 지능과 감성지수를 향상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러시아 모스크바시교육청이 발레교육 특성화 학교로 지정한 1405학교의 네스테로바 루드밀라 교장(50·사진)은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은 발레리나 출신이다. 루드밀라 교장은 전반적인 학교 운영과 함께 이 학교의 발레교육을 책임지고 있다.

루드밀라 교장은 “우리 학교의 교육은 미학과 무용교육에 바탕을 두고 개인의 적성 및 특기를 고려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발레교육의 장점에 대해 “작품 묘사 및 해석을 통해 비평의 기초를 익히고 작품을 통해 문화와 역사적 관점을 확립하며 다른 분야에도 자극을 줘 전체 교육과정을 활성화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무용을 통해 미학적 개념을 접하고 창조적인 능력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발레수업은 언제 이뤄지나.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오전에 정규수업을 하고 점심시간이 지난 뒤 2시간 동안 전교생을 대상으로 발레수업이 실시된다.”

-전문무용인 양성과 학생들의 예술적 소양 함양 가운데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있나.

“그것은 전적으로 학생들의 선택이다. 우리 학교는 정부에서 인정한 발레교육 특성화 학교이지 발레전문학교는 아니다. 체육시간을 이용해 다른 운동 대신 발레수업을 하는 것이다.”

-졸업생의 진로는….

“취미로 발레를 하는 학생도 있고 졸업 후 대학에서 발레를 더 공부하거나 전문무용인이 되는 학생도 있다. 졸업생의 25% 정도가 전문무용인의 길을 걷고 있다. 나머지는 각자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로 진출한다.졸업생 중에는 국가정보기관에서 근무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학생들이 입학하나.

“어려서부터 발레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지원하면 간단한 테스트를 거쳐 선발한다.”

모스크바=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서울에선…

지난해 여름방학을 맞아 컴퓨터교육을 받고 있는 초등학교 학생들.-동아일보 자료사진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고 학생들의 개성과 창의력 신장을 개발하기 위해 국내에서도 ‘방과후 특기적성교육’ 제도를 도입해 실시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1998년 이 제도를 도입한 이후 지금은 거의 모든 초중고교에서 방과 후 특기적성교육을 실시 중이다.

서울시교육청은 방과 후 특별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학교당 1년에 300만원을 지원하고 있으며 초등학교 44개교를 ‘선도학교’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음악 미술 분야에 재능이 뛰어난 학생을 대상으로 주말과 방학을 이용해 영재교육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현재 시교육청이 지정한 음악 거점학교 4곳과 미술 거점학교 4곳에서 모두 320명이 심화 교육을 받고 있다.

학생들의 참여도가 높은 프로그램은 학교급별로 차이가 있다. 초등학교의 경우 △미술 △컴퓨터 △영어 △체육 순이고 중학교는 △체육 △컴퓨터 △일본어 △음악 순이다.

그러나 대학입시의 부담이 큰 고교의 경우 특기적성 교육이 비교과보다는 교과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보충수업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2002년 12월 현재 서울시내 인문계 고교 가운데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방과 후 특기적성교육은 수학(181개교 6만2864명) 외국어(172개교 5만5660명) 논술(153개교 4만4164명) 등 주로 입시 관련 과목이었다.

실업계고 특기적성교육 역시 컴퓨터(62개교 1만2815명) 영어(29개교 2037명) 등 취업이나 입시에 유리한 과목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 학생들의 개성과 창의력 신장이라는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비교과 영역의 활성화를 위해 비교과를 가르치는 강사료 지원 예산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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