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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4월 17일 19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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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본궁에 붙어 있는 현판이다. 후세인 대통령은 91년 걸프전 후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기 위해 본궁을 세웠다. 하지만 12년도 안 돼 궁전의 주인은 자취를 감췄다.
입구에서 대통령궁 본관까지 가려면 30분을 걸어야 한다. 도중에 200∼300m 간격으로 화려하지만 폭격에 폭삭 주저앉은 건물들이 드문드문 서 있다.
대통령궁에 이르는 마지막 경비초소에는 포장도 안 뜯긴 이라크군의 탄약과 박격포탄이 뒹굴고 있었다. 무기는 물론 군화까지 곳곳에 버려져 있는 것은 다급하게 민간인 복장으로 갈아입어 총알받이를 피해보려는 인간적 본능 때문이었을 게다. 갑자기 미군 초병과 실랑이를 벌이던 아낙의 얼굴이 떠올랐다. 운이 좋았다 해도 포로 신세다.
본관에 들어가기 앞서 ‘사담병원’이라는 이름의 대통령 전용 병원에 들렀다. 진료실과 응급실에는 환자를 치료한 흔적은 없고 방마다 후세인 대통령의 사진이 아직 걸려 있다. 쿠웨이트 출신 카이드 오사마는 보이는 사진마다 뜯어 내린 뒤 상소리를 해가며 발길질을 해댔다.

대통령궁이라는 표시는 없었다. 하지만 바그다드를 처음 찾은 취재진도 한눈에 대통령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궁 옥상에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보다 큰 후세인 대통령의 대형 흉상이 4개나 세워져 있었다.
대통령궁은 흉상이 방문객을 압도하는 후세인 대통령의 집무실과 맞은편 50m 높이의 부속건물로 나뉜다. 부속건물은 대형 미사일을 맞아 주저앉았고 그 충격으로 주 기둥이 뒤틀려 있어 곧 무너질 것만 같다.
본관 1층엔 배구장 6개를 이어 붙인 크기의 응접실과 오페라를 공연해도 될 법한 대형 연회장 등이 있고 한가운데에 회의실이 있었다. 이 응접실에서 후세인 대통령이 장군들의 충성서약을 받는 장면이 TV를 통해 자주 방영됐다. 먼지에 뒤덮여 있는 지금, 그때의 ‘영화’를 떠올리기는 어렵다.
대형 주방 한 구석에는 은제 식기들이 먼지와 함께 뒹굴고 있다. 약탈자들보다 미군이 더 빨랐던 모양이다. 지하실에는 영화 상영관이 있다.
후세인 대통령과 그 아들 우다이 쿠사이 등 이라크 전쟁지도부가 모이던 회의실은 ㅁ자 형태로 고급 가죽의자가 배치돼 있다. 회의실 한 쪽의 대형 책장엔 ‘이라크 역사’와 ‘동물 이야기’라는 제목의 아랍어 전집이 꽂혀 있다. 오사마는 “동물(후세인 대통령)이 동물을 좋아한 모양”이라며 비아냥댔다. 후세인 대통령이 숙독하던 ‘이라크 역사’는 오늘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외세에 대항하는 아랍지도자를 자처했던 후세인 대통령은 3700여년 전 바빌로니아 왕국을 세웠던 함무라비 대왕의 후계자를 자처해 왔다. 자신의 흉상에 함무라비의 갑옷을 입혔고 최정예 공화국수비대의 1개 사단 명칭을 함무라비라고 정했다. 대통령궁 진입도로변에 세운 함무라비 동상은 인류 최초의 성문법전을 만든 그의 지혜를 상징하듯 저울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후세인 대통령의 저울’은 무엇을 달았을까. 그는 30여년 동안 경쟁자들의 무게를 달아 조금이라도 부담스러우면 가차 없이 처단해 왔다. 그의 권력저울에는 견제와 균형이 없었고 그 중심에는 이라크 국민이 아니라 자신이 있었다.
바그다드=박래정특파원 ecopark@donga.com
김성규특파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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