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테러가능성 보고받고도 조치안해”

  • 입력 2002년 5월 17일 17시 52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9·11테러가 발생하기 전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 가능성에 대해 사전 정보보고를 받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미 의회가 부시 행정부의 위기대처능력을 문제삼으며 대대적인 정치공세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부시 대통령은 이 같은 보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그것도 언론에 보도된 뒤에야 시인해 도덕성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됐다.》

워싱턴포스트는 17일 “대 테러전쟁 이후 지속돼온 부시 대통령의 정치적 ‘무적(無敵)기류’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며 “이 문제는 11월 중간선거와 2004년 대선에서 공화당과 부시 대통령에게 치명적인 악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터져나오는 언론 보도〓미국의 CBS방송은 부시 대통령이 9·11 테러가 일어나기 불과 한달여 전인 지난해 8월6일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던 텍사스주 크로퍼드의 목장에서 중앙정보국(CIA)으로부터 빈 라덴의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의 비행기 테러 가능성에 관해 보고를 받았다고 15일 보도했다.

이 방송은 또 로버트 뮬러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지난해 7월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있는 한 요원으로부터 빈 라덴의 추종자들이 미국의 항공학교에서 테러를 위한 훈련을 받고 있을 수 있으니 이를 조사해달라는 메모를 받았으나 이를 무시했다고 전했다.

또 미 백악관은 부시 대통령이 비행기 납치계획에 대한 보고를 받기 한달 전인 지난해 7월5일 연방항공청(FAA) 등 10여개의 연방정부 기구 관계자들과 긴급회의를 가졌으나 대책을 마련하는 데 실패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17일 보도했다.

이에 앞서 NBC방송은 9·11 테러가 발생하기 불과 이틀전인 지난해 9월9일 부시 대통령의 집무실에 알 카에다 조직 분쇄를 위한 ‘국가안보 대통령 작전명령’이 올라왔으나 그는 테러가 발생할 때까지 이 계획에 서명하지 않았다고 보도,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들끓는 의회와 유족들〓부시 대통령이 테러 가능성에 대해 사전에 많은 정보를 보고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미 의회와 테러희생자 유족들이 들끓고 있다.

민주당의 토머스 대슐리 상원 원내총무와 리처드 게파트 하원 원내총무는 “부시 대통령이 테러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8개월 동안이나 숨겨온 이유가 과연 무엇이냐”며 부시 대통령에게 CIA 보고 내용과 FBI 요원의 메모를 의회에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대슐리 총무는 정보기관의 태만여부를 가리기 위해 정보위원회뿐만 아니라 다른 위원회에서도 청문회를 열어 진상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에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도 진상조사에 동의했다.

뉴욕타임스는 민주당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9·11테러 이후 유지해왔던 대 테러전에 대한 전면지지 방침을 철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9·11테러 당시 부인이 국방부에 충돌한 비행기에 타고 있다가 사망한 스티븐 푸시는 “그가 그런 정보를 사전에 알았다면 비행기를 타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들이 그렇게 많이 알았으면서도 누구에게도 경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괘씸한 일”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의 시인과 해명〓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6일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CBS 등 언론의 보도내용을 대부분 시인했다. 그는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받은 보고는 구체적인 정보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에 근거해 미국의 항공 시스템을 마비시킬 수도 있는 조치를 취할 수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부시 대통령의 반응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그와 함께 회의를 했던 공화당 상원의원들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은 “지금은 정치의 계절”이라고 말했다. 이번 파문을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민주당의 정치공세쯤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뜻이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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