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만여 외국인 한국생활 '걸림돌'

  • 입력 2001년 10월 10일 18시 56분


《“관광객 유치에만 급급해 하지말고 한국에 사는 외국인 이웃들에게 신경 좀 써 주세요.” 각종 국제행사가 봇물을 이루고 영어공부 열기, 조기유학 붐이 ‘전 국민의 국제화’를 실감케 하는 때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사는 외국인들은 “정작 국내에 있는 외국인에 대한 배려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볼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내에 살고 있는 외국인 수는 지난해 11월 현재 15만812명. 95년도 5만5016명의 3배에 육박하고 있지만 이들이 겪는 ‘사소해 보여도 엄청난’ 장애물이 여전한 실정이다.》

▽외국인은 모두 신용불량자?〓최근 휴대전화를 신청하기 위해 서울 강남구의 한 대리점을 찾은 미국인 J씨(33·회사원)는 점원으로부터 “외국인이 선불전화가 아닌 일반이동전화를 신청할 경우 20만원의 보증금을 내야한다”는 말을 들었다.

외국인은 신용 확인절차가 어려워 내국인 신용불량자들처럼 보증금을 받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반면 일반 국내 가입자들은 1만3000원 상당의 보증보험에 가입하면 보증금을 면제해 주고 있다.

J씨는 “모든 외국인을 신용불량자와 같이 취급하는 것 같아 불쾌하다”고 말했다.

▽한국영화 보고싶어요〓한국생활 2년째인 프랑스인 아이다 삭스(35·맨파워컨설팅코리아 이사)는 “한국인들의 정서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들을 보고 싶지만 영어 자막이 나오는 전용 영화관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외국인들은 “영화, 연극 등 한국의 대중 문화를 직접 체험한 외국인들이 ‘민간 외교관’이 되어 본국의 친구, 가족들에게 감상을 전하면 한국 문화의 해외 진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 안내부족〓서울시 외국인 시정 모니터 요원인 캐나다인 브래들리 보투어는 서울시 영문 홈페이지(http://english.metro.seoul.kr)를 통해 “발급받은 비자에 따른 고용 제약 또는 허용 범위 등 법적인 문제는 물론 납세, 주택, 교통 정보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궁금증에 속시원히 대답해주는 곳이 없다”고 지적했다.

보투어씨는 “최근 여러 관공서가 영문 홈페이지를 운영하고는 있지만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안내된 번호로 전화하면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한국인 직원이 없다”며 “외국인의 궁금증을 접수해 통보해주는 ‘외국인 전용 전화 민원실’ 운영을 활성화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이버 차별?〓교환학생 김은영씨(22·영국 교포 2세)는 국내 각종 웹사이트를 검색하다가 여러 번 ‘좌절’을 겪었다. 무료사이트의 경우라도 자세한 콘텐츠를 보기 위해서는 회원가입이 필수적인 곳이 많은데 반드시 주민등록번호를 명시하게 되어 있어 외국인 가입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

김씨는 “가입이 가능한 사이트도 ‘외국인은 채팅, 게시판 등 일부 서비스를 사용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어 몹시 불편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다른 문제점〓9월 한국지방자치단체국제화재단이 주최한 ‘외국인 생활문화향상을 위한 국제세미나’에 참가한 원한광 한미교육위원단 단장 등은 △월세, 전세 등 주택문제 △신용카드 발급, 은행 대출 등 신용거래의 제약 △지나치게 비싼 외국인학교 학비 △외국에서 발급받은 카드로 돈을 찾을 수 있는 현금지급기 부족 △외국인 유학생 지원센터 미비 등을 지적하고 개선을 당부했다.

<김현진기자>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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