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정치권-언론, 美 군사행동 지연 이상기류

  • 입력 2001년 9월 27일 18시 51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군사 대응이 늦어지면서 11일 테러 참사 발생 이후 일치된 모습을 보여온 미국의 국론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차츰 균열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미 의회는 전대미문의 테러가 발생하자 국난을 겪게 되면 여야를 초월해 단결해온 전통에 따라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행정부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왔다. 재난 복구 등을 위한 긴급예산은 행정부가 요구한 것보다 2배가 많은 400억달러를 승인했고, 테러 사건으로 파산위기에 처한 항공업계에도 150억달러를 지원토록 했다. 2002회계연도 국방예산도 당초보다 170억달러를 증액, 통과시켰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위기 극복을 위해 더 많은 권한과 예산을 부여할 것을 요구하고 나서자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일각에서도 서서히 비판과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의 톰 대슐 상원원내총무는 25일 부시 행정부의 항공안전법안이 노동자보다는 기업에 우호적인 내용으로 돼 있다며 “항공사의 대량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특별지원법안이 첨부되지 않는 한 이를 통과시킬 수 없다”고 제동을 걸었다. 민주당의 찰스 랭겔 하원 의원은 26일 미 무역대표부가 부시 대통령에게 의회의 동의 없이 무역협상을 벌일 수 있는 신속협상권을 요구하는 데 대해 “무역대표부가 이번 테러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또 공화당 상원 서열 2위인 돈 니클스 의원 등은 행정부가 더 많은 역할과 예산을 요구하며 ‘큰 정부’를 지향하고 있는 것은 전통적으로 ‘작은 정부’를 지향해온 공화당의 정책노선에 반한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언론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최근 백악관과 국무부의 브리핑에선 오사마 빈 라덴이 과연 이번 테러에 관련된 증거가 있는 지, 행정부가 언론에 거짓말을 하는 것은 없는지를 따지는 질문이 급증하고 있다. 아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이 “언론은 질문할 권리가 있지만 정부는 대답하지 않을 책임이 있다”며 국익차원에서 군사계획 등을 공개할 수 없다고 해명했으나 언론은 수긍할 수 없다는 태도다. 노련한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부장관이 25일 “언론에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며 긴급진화에 나선 것은 이 같은 이상기류를 감지했기 때문.

평소 부시 행정부에 대해 우호적 태도를 보여온 월스트리트저널지는 26일 부시 행정부가 외교안보 위기엔 잘 대처하고 있지만 침체로 치닫는 경제위기엔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있다고 신랄히 질책하는 사설을 게재하기도 했다.

미 국민의 대다수가 아직은 테러와의 전쟁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있지만 시민단체와 대학가 등에선 반전 주장이 만만치 않다.

LA 타임스는 26일 공화당은 무력사용 확대 압력을 받고 있고, 민주당은 이에 반대하는 것을 예로 들며 앞으로 정치권에서도 무력사용의 적절성을 둘러싼 논란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