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테러 대참사]세계각국 자국민 피해집계 분주

  • 입력 2001년 9월 13일 18시 54분


“(세계무역센터 빌딩) 계단은 이미 탈출자들로 만원이어서 모두 거북이 걸음이었다. 3개 층을 내려가자 아예 움직일 수도 없었다. 소방관들이 부상자들을 먼저 피신시키기 위해 현장을 통제하자 모두 좌우로 비켜선 채 부상자 운반 통로를 만들어 줬다. 피와 살이 구분이 안될 정도로 선혈이 낭자하거나 얼굴과 머리에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 심장병 발작 환자도 있었다. 맹도견에 의지한 채 도피하는 맹인도 있었다. 극한상황에서도 두말 없이 약자에게 길을 양보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중국의 영자신문 차이나 데일리 쑨링링(孫玲玲) 북미지국장은 13일자 홍콩 문회보(文匯報)에 실린 ‘인간 연옥(煉獄) 탈출기’에서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테러 비행기와 충돌한 직후 소방관들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아 살아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이렇게 전했다.

그는 굉음과 함께 건물이 요동을 쳐서 지진인가 생각하던 중 TV로 테러 소식을 들은 남편의 전화를 받고 대피를 시작했다. 그는 “스프링클러에서 쏟아지는 물과 먼지, 건축자재 파편, 진흙 등으로 온 몸이 뒤범벅이 된 채 건물 로비까지 정신 없이 달려 내려와서야 구두가 벗겨져 나간 줄을 알게 됐다”고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표현했다.

사상 최악의 테러사건으로 기록된 대참사는 미국인 뿐만 아니라 수많은 외국인들에게도 끔직한 희생을 안겨줬다.

글로벌 경제의 상징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기업이 입주해있는 세계무역센터에는 수천명의 외국인이 근무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때문에 빌딩 붕괴에 따른 자국민의 피해 소식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는 각국 사람들은 자국민의 극적인 생환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환호성을 올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번 사태로 실종된 일본인이 100여명”이라고 발표해 일본열도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세계무역센터에 사무실을 둔 31개 기업에서 집계한 실종 직원이 22명에 이른다. 79∼81층에 입주한 후지은행 지사의 경우 직원 12명이 실종상태다. 후지은행 대변인은 “직원들이 시내 응급센터와 병원 등을 돌아다니며 실종된 동료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는 실종자에 대한 정확한 집계 발표를 미루고 있지만 정부 관계자는 “사망자가 100명 정도 될 것 같다”고 비관적인 예상을 했다.

영국인들은 아일랜드 먼스터주 출신의 클리퍼드 남매의 엇갈린 운명을 지켜보며 가슴을 졸여야 했다. 쌍둥이 빌딩에서 근무하던 오빠 론니는 사고 직후 건물에서 대피해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테러에 이용된 피랍항공기에 여동생 루스 클리퍼드 맥코드와 4세의 딸 줄리아나가 탑승했던 것.

멕시코의 한 언론도 100∼150명의 자국민이 실종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고 호주 정부는 3명의 호주인이 사망했음을 확인한 가운데 희생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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