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아비규환 현장 이모저모

  • 입력 2001년 9월 12일 23시 34분


미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이고 참혹한 재난이 발생한 지 하루가 지난 12일 뉴욕은 평소같으면 매우 분잡할 것인 데도 거리가 텅 비다시피 했다.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폐허 현장에는 각 지역에서 파견된 수천명의 구조대원들이 매몰자 구조작업에 비지땀을 흘렸다. 워싱턴은 차츰 안정을 찾아갔으나 경계는 삼엄했다.

◆뉴욕

◇맨해튼 거리 인적 끊겨

○… 12일 맨해튼은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거리가 텅 비어 도시 전체가 완전히 마비된 것처럼 보였다. CNN 방송은 “학교는 문을 닫았으며 기업체들은 직원들에게 집에 그대로 있을 것을 권하고 있다”고 전했다.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 시장은 무역센터 건물 내에 본사를 두고 있는 뉴욕 뉴저지 항만 관리청 소속 경찰관 2명이 무사히 구조됐다고 밝혔다. 이 시장은 또 붕괴된 110층 쌍둥이 빌딩 잔해 속에 갇힌 사람들로부터 휴대전화를 통한 구조요청 전화가 오고 있으며 이들은 근처에 다른 생존자들이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경찰 소식통 역시 현재 갇혀 있는 사람들이 911 응급구조전화를 걸어 자신이 갇힌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세계무역센터 근처엔 앰뷸런스와 소방차량 등 응급차량을 제외한 모든 차량의 통행이 금지됐다. 대부분의 빌딩이 소개(疏開)돼 거리엔 사람들로 가득찼다. 공포에 질린 얼굴로 휴대전화에 매달려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처음보는 사람들끼리도 “나는 창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을 25명이나 봤다”는 등 서로 목격한 것을 얘기하며 “다음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라며 걱정했다.

맨해튼 전역의 대중교통도 한동안 마비됐다. 간간이 지나는 버스는 일단 무조건 타고보는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맨해튼으로 들어가는 모든 다리와 철도는 완전봉쇄됐다.

◇"영화냐 현실이냐" 명연자실

○…사건 발생 당일인 11일 오후가 되면서 인근 병원들에는 부상자 못지 않게 헌혈을 하려는 시민들, 봉사를 자원하는 의사 간호사 의과대학생들이 몰려 들었다.

당황과 공포 속에서도 뉴욕시민들은 “이게 도대체 영화냐, 현실이냐”라고 서로에게 묻곤 했다. 뉴욕주립대에서 이미지와 영화에 대해 강의하는 재클린 레이치 교수는 “예술이 현실을 모방한다는 건 천만의 말씀”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오늘 우리 눈 앞에서 벌어진 현실은 영화 수십개를 합친 것 이상”이라며 “이제는 현실이 영화를 모방하는 상황”이라고 몸서리를 쳤다. 걸어가는 사람에게만 허용된 브루클린 다리는 패잔병처럼 지친 얼굴로 터덜터덜 걷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무역센터 붕괴로 수백개 입주 업체들이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은 가운데 미국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가 단일기업으로 최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모건 스탠리는 폭파된 두 동의 건물 전체 입주 공간 가운데 10분의 1가량을 임대해 350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다. 필립 퍼셀 회장은 사고 후 성명을 통해 “대부분의 직원들로부터 연락이 없어 최악의 사태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 도이체 방크, 올스테이트 보험, 후지 은행 등 건물 상층부에 주로 입주해 있던 금융기관들은 임대공간이 넓어 피해가 클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12일 국방부(펜타곤) 건물의 화재가 테러 발생 24시간이 지나도록 완전히 진화되지 않은 가운데 연방 정부 공무원들이 업무에 복귀해 각 부처별로 본격적인 사태수습에 나서는등 긴장 속에서도 차츰 정상을 되찾기 시작했다.

최소한 800명 이상이 숨진 국방부 건물에서는 소방대원들이 밤새 진화작업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오전까지 일부 구역에서는 계속 검은 연기를 뿜어냈다.

◇대부분 학교 일시 휴교

국방부 주변에 어지럽게 널린 구조 차량과 장비를 헤치고 출근 길에 나선 직원들은 전날 테러로 폐허가 된 건물의 처참한 현장을 지켜보며 망연자실했으며 일부는 테러로 인해 건물의 안전성에 문제가 제기되는 바람에 임시 사무실에서 근무를 해야 했다.

○…백악관 의회 국무부 등 주변은 여전히 교통이 통제된 가운데 경찰은 신분증을 확인해 해당 부처의 직원들에게만 출입을 허용했다.

전날 긴급 대피했던 의회는 오전 10시 회의를 속개해 상하 양원별로 전날 테러 행위를 강력히 규탄하는 결의안 채택에 들어갔다. 평소 의회에는 아침 일찍부터 관광객들이 줄을 서 견학에 나섰으나 이날은 관광객의 접근이 일절 중단됐다.

워싱턴과 인근 버지니아주, 메릴랜드 주 등의 각급 학교는 이날 대부분 문을 닫았으며 일부 학교에서는 특히 어린이들이 받을 심리적 충격을 고려해 부모들에게 TV의 테러 현장 중계방송을 보여주지 말고 사건 개요도 자세히 설명하지 말아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미전투기 24시간 감시돌입

○…11일 오후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의도적으로 비행기 테러공격을 받은 펜타곤 건물에서 기자 브리핑을 갖고 ‘건재한 국방부의 기능’을 강조했다. 아울러 전 세계 미군에 최고의 경계태세인 스레트콘 델타(Threatcon Delta)를 발효했다. 미군은 동서 양안의 주요 도시 해역에 항모 등 전함 10여척을 배치하는 등 추가 공격에 대비한 대응 태세를 갖췄다.

또 네브래스카주에 있는 북미방공사령부(NORAD)는 미 전역 상공에 요격기와 정찰기, 조기경보통제기, 공중급유기 등을 배치했고 워싱턴 DC 상공에는 F16 전투기들을 띄워 24시간 감시에 들어갔다. 국방부 마이크 페리니 대변인은 “민간인 밀집지역에 위협이 될 만한 어떤 항공기도 요격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뉴욕〓김순덕기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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