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돌풍 배경]"파벌 나눠먹기에 신물" 평당원 몰표

  • 입력 2001년 4월 23일 18시 29분


일본 정계에 오랜만에 흥분과 환호, 한숨과 반성의 목소리가 교차하고 있다. 물론 주역은 일본 총리와 자민당 총재 자리를 사실상 거머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후생상이 다.

12일 고이즈미 전후생상,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전총리, 가메이 시즈카(龜井靜香) 정조회장, 아소 다로(麻生太郞) 경제재정상 등 4명이 자민당 총재후보에 출마하자 일본에서는 누구나 하시모토의 압승을 점쳤다. 그러나 불과 열흘 만에 하시모토는 ‘명예로운 퇴진’으로 체면을 유지해야 할 처지에 놓였고 당내 각 파벌들은 ‘미운 오리’ 고이즈미의 안색을 살펴야 하는 엄청난 변화가 초래됐다.

▽직접선거의 위력〓고이즈미 돌풍의 원천은 평당원들의 힘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에 3표씩의 선거권이 부여됐다. 지금까지는 한 표에 불과했다. 당원들의 권리를 그만큼 늘려준 것이다.

대부분의 도도부현은 당원의 직접선거에서 1위를 한 후보에게 3표를 모두 몰아주기로 결정했다. 이 방식이 높기만 하던 중앙정계의 힘을 깨뜨리는 기폭제가 됐다. 평당원들은 지방 예비선거에서 고이즈미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다.

▽대마불사 신화 붕괴〓하시모토파는 다나카(田中)―다케시타(竹下)―오부치(小淵)파의 맥을 이으면서 자신의 파벌에서 직접 총리를 내거나 킹메이커 역할을 하면서 일본의 정권을 주물러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기존의 파벌 나눠먹기에 국민과 당원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더 이상 의원수나 조직을 앞세운 선거가 통하지 않는다는 선례가 만들어진 것. 1955년 이후 수년간을 제외하고 ‘만년 집권당’으로 지내온 자민당에 대한 일본국민의 경고라고 할 수 있다.자민당은 지난해 10월 나가노(長野)현부터 15일 아키타(秋田)현 지사선거에 이르기까지 4차례의 지사선거에서 연패했다.

고이즈미 후보가 주목받는 이유

항 목통 념고이즈미 후보
파벌논리총리가 되려면 최대파벌에 속해 있거나 최소한 최대파벌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모리파 회장직을 버리고 ‘탈파벌’을 선언하는 등 ‘상식’에 역행하는 선거방법 채택.
사전조정총재선거는 형식적인 것이며 선거이전에 파벌간 조정이 끝난다.최대파벌의 하시모토 후보와 끝까지 대결자세를 표명.
파벌리더에의

충성

파벌리더의 의사를 존중해야만 출마의 기회도 잡고 도움도 받을 수 있다.파벌리더인 모리총리가 최대파벌인 하시모토파와 싸워 이기는 것은 무리라며 만류했으나 출마강행.
경력총리가 되려면 당 간사장이나 정조회장, 각료로는 대장상, 외상 등의 주요포스트를 거쳐야 한다.눈에 띄는 당직을 맡은 적도 없고 정부내에서는 후생상과 우정상 경험뿐.
당내 화합당의 이익에 반하는 주장을 하면 도움을 받을 수 없다.우정사업 민영화 등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조직 선거선거는 조직이므로 직능단체 등을 많이 장악하고 있는 후보가 이기게 되어 있다.전혀 조직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TV토론과 개혁의지, 참신성 만으로 바람을 일으켰다.
당원과 국회 의원

의 영향력관계

지방 예비선거는 별다른 영향력이 없으므로 중앙정계의 국회의원을 많이 확보해야 이긴다.오히려 지방당원들의 지지를 앞세워 국회의원들은 당원들의 뜻에 따르라고 압박.

▽고이즈미 실험의 전망〓고이즈미 체제의 앞날이 마냥 밝은 것은 아니다. 그가 26일 총리로 확정되면 임기는 정기 총재선거가 있는 9월까지다. 이때 다시 신임을 받으려면 7월 실시되는 참의원선거에서 자민당이 선전해야 한다. 현재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승리하리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민당이 참패할 경우 고이즈미는 책임을 지고 총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또 고이즈미 후보가 ‘탈파벌’을 선언했지만 정권안정을 위해서는 다른 파벌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구태의연한 파벌안배를 답습하거나 뜻밖의 실수를 저지르면 그에 대한 인기가 곧 냉각될 수 있다.

고이즈미가 주장해온 정치 경제 분야의 개혁이 그의 말대로 실현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직은 의문이 많다. 그가 파벌 정치의 대명사격인 자민당에서 잔뼈가 굵은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리파 회장으로서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 지키기에 앞장선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파벌간 나눠먹기식 각료 인사를 없애고 당선 회수에 관계없이 젊은 인재와 여성 인사를 적극 등용하겠다고 주장했다. 경제 분야에서 666조엔으로 늘어난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국채 발행을 연간 30조엔 이내로 억제하는 재정 재건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외교 안보분야는 고이즈미의 최대약점이다. 외교 안보 분야에 대한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노선 자체도 불투명하다. 선거 과정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적극 옹호하고 야스쿠니(靖國)신사를 공식 참배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국내 현안에 대해서는 개혁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재확인했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고이즈미 헤어스타일 변화인상 줘 득표도와▼

헤어스타일이 승패를 갈랐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전 후생상이 강적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전 총리를 물리치고 일본 자민당 총재로 사실상 확정되면서 두 사람의 헤어스타일이 화제가 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고이즈미 후보의 자연스러운 파마가 딱딱한 인상을 주는 하시모토 후보의 포마드 스타일을 눌렀다는 분석이다. 파마는 자유분방함을, 포마드 스타일은 완고하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표가 고이즈미 후보에게 흘러갔다는 해석이다.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지에 따르면 고이즈미 후보는 20여년 전부터 일년에 3, 4차례씩 자신의 지역구인 가나가와(神奈川)현으로 내려가 단골 이발소에서 파마를 한다. 비용은 8000엔.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머리칼을 고정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생각해 낸 것이 파마였다는 것. 그는 일본 국회의원 가운데는 가장 먼저 파마를 했다. 그의 파마 스타일은 ‘베토벤형’으로 불린다.

이에 비해 하시모토 후보는 기름을 발라 뒤로 넘기는 전형적인 ‘회사인간’형 머리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약간의 기름기가 있는 크림을 쓴다. 시세이도(資生堂)에서 21년 전부터 발매하고 있는 2100엔짜리 제품을 애용한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고이즈미 "김치 싫어요" 한일관계 냉각 우려▼

일본 총리와 자민당 총재 당선이 확정적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후보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는 등 비지한파(非知韓派)로 알려져 앞으로의 한일(韓日) 관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23일 주일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고이즈미 후보는 최근 한국의 고위 외교관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김치가 매우 싫다”고 말한 적이 있다는 것. 그는 자신의 말이 지나쳤다고 생각했는지 “나는 일본의 절인(pickled) 반찬도 싫어한다”고 부연했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전해들은 주일 한국대사관측은 그의 대한(對韓) 외교가 원만히 이뤄질지를 걱정하고 있다. 대사관측이 그의 방한 경험과 지한 인사 접촉 여부를 꼼꼼히 찾아봤지만 이렇다할 기록을 발견하지 못한 점도 이런 우려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

대사관측은 그가 과거 한일관계를 적극적으로 이끌었던 후쿠다 다케오(福田赴夫) 전 총리의 비서를 지낸 적이 있다는 점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기대에 불과한 형편이다.

고이즈미 후보는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우려할 만한 발언들을 다수 쏟아냈다.

그는 총리가 되면 8·15 패전일에 제2차대전 A급 전범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하겠다고 공언했으며 자위대의 집단자위권 허용 문제에도 매우 전향적이다. 또 우익 교과서 재수정은 있을 수 없다고 했고 특히 주일 한국대사가 자신을 포함한 일본 의원들에게 우익 교과서의 검정불합격을 요구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고이즈미 정권의 등장은 한국 정부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주일 외교가는 전망하고 있다.

〈도쿄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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