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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4월 11일 1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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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상원은 10일 지난해 11월 하원이 통과시킨 안락사 관련 법안에 대한 표결에서 전체 의원 75명 중 찬성 46표, 반대 28표(불참 1명)로 승인했다.
이로써 네덜란드에서는 안락사를 인정하는 법안 마련이 최종 마무리됐으며 베아트릭스 여왕의 재가 등 필요한 절차를 거쳐 빠르면 올 여름부터 안락사를 시행할 수 있게 됐다.
안락사 법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 각국은 비난과 지지의 엇갈린 반응을 나타냈다.
엘스 보르스트 네덜란드 보건 장관은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방법은 충분히 있으며, 안락사는 끝없는 고통을 안고 살 수 밖에 없는 이들에게 최후의 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통과된 법안은 ‘치유 불가능한 병에 걸려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 있는 환자가 온전한 정신으로 안락사를 꾸준히 요청할 때’ 안락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또한 의사는 환자를 오랫동안 진료한 사람이어야 하며 최소한 1명 이상의 다른 의사와 환자 상태에 대해 숙의한 다음 결정을 내려야 한다.
모든 안락사의 시행은 13인으로 구성된 위원회에게 결정과정을 서면 제출한 후 지역보건위원회로부터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한다. 안락사 방법은 의학적으로 적절한 방법만 용인되며 이 과정에서 의사가 위법 행위를 저지른다면 처벌받도록 했다.
환자는 법적으로 네덜란드 국민이어야 하며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심해 자기 결정을 말하기 힘들면 서면으로 안락사를 요구할 수도 있다. 16세 미만 청소년 환자의 안락사는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
<권기태기자>kkt@donga.com

▼네덜란드 합법화까지…불가피한 안락사 20년간 묵인▼
네덜란드에서는 지난 20여년간 불가피한 안락사를 묵인해 왔다. 1993년 의회는 안락사를 기소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의사들이 기소 면제를 받기 위해 준수해야 할 지침을 채택했다.
이같은 조치는 사실상 안락사 합법화의 직전 단계였다. 그러나 아직 법조문에는 안락사를 실시한 의사에 대해 최장 12년형을 선고할 수 있다는 처벌 규정이 남아 있어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최근 네덜란드에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5%가 안락사에 찬성, 이미 대세는 기운 상태였다. 네덜란드에서는 96년부터 최근까지 2123명의 환자가 안락사했으며 이 중 89%가 말기 암 환자였다.
안락사는 스위스 콜롬비아 벨기에 등에서도 묵인되고 있다. 특히 벨기에는 안락사 법 초안에 합의, 의회에서 표결에 부칠 계획이다. 또 미국 오리건 주도 96년부터 허용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96년 북부 주의회에서 안락사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97년 연방의회가 이를 무효화시켰다.
네덜란드 의원들과 안락사 찬성론자들은 네덜란드의 안락사 합법화를 계기로 다른 나라에서도 이 논쟁이 가열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국내외 반응…종교계 1만명 반대 시위▼
▽반대 여론〓10일 네덜란드 상원 주변에는 안락사에 반대하는 교회 지도자 등 1만여 명의 시위대가 찬송가를 부르며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2만5000명의 안락사 반대 청원 명부를 제출했으며 기독교 학교들은 수업을 취소하고 학생들에게 시위 참가를 권유했다.
민간단체 ‘생명을 위한 외침’은 이날 “안락사 법안은 언젠가 무효가 된다”며 “의원들은 오늘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야당인 기독민주당 등이 법안 통과를 반대했으나 대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각국 반응〓안락사를 지지하는 대표적인 민간단체인 ‘네덜란드 자발적 안락사협회’(DVES)는 이날 상원 표결에 앞서 영국 프랑스 벨기에 호주 미국 등의 지지자들로부터 수많은 격려 서한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간 환자들의 안락사를 도와온 호주 의사 필립 니취케 박사는 네덜란드 선적의 선박을 매입해 호주 인근의 공해에서 안락사를 도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유리 셰브첸코 러시아 보건장관은 “안락사 합법화는 남용 여지가 너무 크다”며 “재산을 가진 병든 노인을 죽게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미국 장애인 권익단체 ‘아직 죽지 않았다’도 성명을 통해 “네덜란드 안락사 법안은 이 방면에서 가장 무자비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폴란드의 타데우스 피로넥 주교는 “안락사는 일단 허용하면 순식간에 번진다”며 “장애인도 대상에 들게 될 것”이라며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