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강성외교 '신냉전' 부르나

  • 입력 2001년 3월 23일 18시 42분


미국의 외교적 행보가 심상치 않다. ‘힘에 바탕을 둔 외교’를 추구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행정부가 출범한 지 2개월이 지난 지금 ‘신냉전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 듯한 찬바람이 불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출범 직후 이라크에 기습 폭격을 단행하고 북한에 대한 빌 클린턴 전 행정부의 포용정책에서 벗어나 강경한 노선을 표방하고 나선 데 이어 러시아 중국과도 외교적 마찰을 빚고 있다.

먼저 미국과 러시아는 ‘외교 전쟁’에 이미 돌입했다. 러시아가 자국 외교관 50명을 추방키로 한 미국의 결정에 대한 보복으로 다수의 미 외교관 추방과 정보기관간 협력관계를 단절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세르게이 이바노프 국가안보회의 서기는 23일 이타르 타스 통신과의 회견에서 “미 외교관 4명을 추방하고 그동안 테러 핵기술확산방지 마약단속 등의 분야에서 미국 정보기관과 유지해온 협력관계를 단절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앞서 그는 22일 폴란드 TV와의 회견에서 “러시아에서 활동중인 미 외교관 1000여명 가운데 우선 4명을 골랐다”며 “추방 대상에는 미 외교관 중 최고위급 인물들이 포함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추방대상에는 미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 등에서 외교관 신분으로 파견된 요원뿐만 아니라 국무부 소속의 순수 외교관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고리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미 NBC방송과의 회견에서 “미국의 비우호적 조치들에 상응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러시아도 미국처럼 50명의 외교관을 추방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2일 미국이 전 FBI요원 로버트 핸슨 사건에 연관된 러시아 외교관들을 대거 추방키로 한 것은 정당한 결정이라고 옹호했다.

아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러시아 외교관 추방 문제에 관해 국가안보팀 안에서 약간의 이견이 있었으나 다른 모든 국내외 정책과 마찬가지로 부시 대통령이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지난주 러시아가 위험국가들에 대량살상무기를 확산시키는 데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등 미국은 최근 대러 공세의 수위를 계속 높여 왔다.

미국은 중국과도 대만에 대한 최신형 이지스급 구축함 판매 문제와 중국의 인권 문제 등을 놓고 첨예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 중국과는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 추진 문제를 놓고도 심각한 이견을 빚고 있다. 특히 북한 이라크 등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미국 본토를 보호하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운 NMD에 대해선 대부분의 유럽연합 국가들도 반대하고 있어 부시 행정부의 외교는 여러 모로 험난한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워싱턴·모스크바〓한기흥·김기현특파원>eligius@donga.com

▼"美-러 외교적 난투극 확대 안된다"▼

미국의 뉴욕타임스지는 24일 미국과 러시아간의 스파이 사건이 양국 관계를 악화시켜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사설 요약.

미국과 러시아는 로버트 한센 스파이(전 미 연방수사국 요원) 사건으로 촉발된 상호 외교관 추방에 착수했으나 양국은 이 같은 전초전이 외교적 난투극으로 확대되도록 해서는 안된다.

미국과 러시아의 지도자들은 일련의 중요한 안보 정치 경제 현안에 직면해 있다. 스파이사건은 그것이 아무리 심각할지라도 워싱턴과 모스크바의 관계에 영향을 미쳐선 안된다.

러시아를 위해 미국을 배신한 한센이 초래한 타격에 비춰보면 미국이 러시아 외교관 50명을 추방한 것은 정당화된다. 모스크바가 불가피하게 이에 대응해 미국 외교관을 맞추방하고 난 뒤에는 (양국이)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 양국간에는 미국의 미사일방어 계획과 상호 핵무기 감축 및 러시아의 낡은 핵무기 해체작업에 관한 협력 등 논의할 현안이 많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등장 이후 러시아 외교는 보다 민족적인 색채를 띠게 됐고 이에 따라 미―러간에는 이미 불화의 조짐이 증대돼 왔다. 그러나 한센 사건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 하여금 푸틴 대통령을 적대하는 기조가 된다면 불행한 일일 것이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부시 행정부의 적대감 드러난 것"▼

러시아는 이번 사태가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미국 조지 W 부시 새 행정부가 갖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적대적 기본 인식이 드러난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상당기간 양국간 관계 악화는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폴란드를 방문중인 세르게이 이바노프 국가안보회의 서기는 22일 폴란드 국영방송인 ‘채널1’과의 회견에서 “‘이번 사태가 미―러 관계 발전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희망한다’는 미국 지도자들의 말은 믿기 어렵다”고 반박하면서 “부시 행정부의 일부 인사들은 냉전적인 사고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다.이바노프는 러시아의 외교안보정책을 총괄하는 인물로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카운터파트이다.이바노프 서기는 이어 러시아가 미국 외교관 맞추방 등으로 미국에 대응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미국을 고통스럽게 하는 방법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며 “1000여명 이상의 러시아 주재 미국 외교관 중에서 미국에 중요한 인물을 찾아낼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한 외교전문가도 “부시 행정부의 대(對)러 정책이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일단은 힘으로 러시아를 제압하는 정책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