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M준수합의 '장고끝 惡手'…"美정책반대" 해석에 곤혹

  • 입력 2001년 3월 1일 18시 57분


“야근을 밥먹듯 하며 정말 열심히 한―러 정상회담을 준비했는데….”

27일 한―러 공동성명에 명시된 ‘탄도탄요격미사일(ABM)제한조약의 보존과 강화’가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 추진 반대’로 해석되면서 국내외에 큰 파문이 일자 정부 관계자들은 “이번 회담의 성과가 빛이 바랬다”며 허탈해 했다.

외교통상부는 휴일인 1일 외교정책실 북미국 구주국 등의 직원들이 전원 출근해 대책을 논의하며 바쁜 하루를 보냈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어두웠다.

이번 파문을 보는 정부 내의 시각은 엇갈린다. 하나는 “국내외 언론이 공동성명의 진의를 오해하거나 왜곡했다”는 언론책임론이고 또 하나는 “이유가 어쨌든 이런 사태를 예상하지 못한 것은 잘못이다”는 자성론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NMD에 대한 직접적인 명시를 요구하는 러시아측을 꾸준히 설득해 ABM조약과 관련한 지극히 일반적인 내용으로 톤을 낮춘 것”이라면서 “그래도 찜찜해 관련 부서간에 여러 차례 협의를 하는 등 충분히 사전 점검을 했다”며 억울해 했다.

이 당국자는 “러시아측은 당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NMD의 문제점을 설명했고 김대통령은 이를 경청했다’는 수준도 좋다며 NMD에 상당한 집착을 보였다”며 “우리는 이에 대해 공식입장이 정리되지 않아 NMD의 직접 표기는 물론 NMD를 시사하는 표현조차 안된다고 주장해 이를 관철시켰다”고 말했다.

특히 러시아측이 공동성명에서 김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직접 언급하며 지지를 표명한 것은 지난해 7월 북한―러시아 정상의 공동선언보다 몇 차원 높은 수준이라고 이 당국자는 강조했다. 그런데도 언론이 ABM 표현에 담긴 이런 의미와 정부의 노력을 정확히 평가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결과적으로 ‘장고 끝에 악수’를 둔 셈 아니냐는 반성의 소리도 나왔다. 일부 관계자들은 “결과론이지만 NMD에 대한 표현을 피하는 데 급급하기보다 이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미―러간에 원만히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원론적 수사를 되풀이하는 게 훨씬 나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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