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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1월 26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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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부설 21세기 평화연구소와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및 러시아연구소가 공동주최하고, SK텔레콤이 협찬한 이 학술포럼은 ①민주화와 사회변화(사회 최장집·崔章集고려대교수) ②시장개혁의 과정과 결과(사회 안석교·安錫敎한양대교수) ③체제변화와 국가재건설(사회 장달중·張達重서울대교수) ④국제환경과 개혁(사회 안병준·安秉俊연세대교수) 등 4개 주제로 나뉘어 진행됐다.
남중구(南仲九)21세기 평화연구소장은 개회사에서 “한국과 러시아는 급격한 사회변화와 정치개혁의 한가운데 서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며 “이번 학술포럼을 통해 성공적 개혁을 위한 지혜를 나누게 된 것은 뜻깊은 일”이라고 말했다.
하용출(河龍出)국제문제연구소장은 “지금까지 민주화와 개혁에 대한 연구는 구미의 역사적 경험과 이념적 경향을 전제로 해왔지만, 한국과 러시아의 체제변환과 개혁에 대해 비교적 관점에서 토의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제1회의: 민주화와 사회변화▼
▽러시아와 한국의 ‘전환론’과 ‘공고론’의 재평가(안드레이 멜빌 러시아 국제관계대 교수)〓한국과 러시아의 민주화는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됐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 반면 러시아가 겪은 탈공산주의의 특수성에 주목하는 견해도 있다. 양국간 민주화 전환과정과 공고화과정을 이해하는데 구조적 요인을 강조하는 견해가 있고 절차상의 요인을 중요하게 보는 견해도 있지만 두 접근방식이 상호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한국과 러시아의 민주화 경험의 비교(박수헌·朴秀憲경희대 교수)〓양국의 민주화 경험에는 상이성과 유사성이 공존한다. 유사성은 두나라 모두 국가주도형 산업화를 거쳤고 민주화 실현과정에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자본주의 질서에 기반을 둔 권위주의적 군사정권의 잔재 제거를 목표로 한 탈우익권위주의 민주화 단계에 있는 반면, 러시아는 계획경제에 기초한 레닌주의적 일당독재체제 제거를 위한 탈공산주의 민주화과정에 있다는게 다른 점이다.
▽러시아의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의 장래(게르만 딜리겐스키 러시아 세계경제와 국제관계연구위원)〓조직화되고 영향력있는 민주적 엘리트가 없어 러시아의 민주화 발전이 더디다. 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개방)이래 15년간 누린 자유와 민주화 진전으로 시민은 자신의 이익을 집단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권위적 관료적 지배체제와 시민간의 충돌은 필연적이다.
▽한국과 러시아 시민사회 비교분석(최우익·崔宇翼서울대 러시아연구소 상임연구원)〓양국 모두 국가가 사회에 대해 권위주의적 영향력을 많이 미쳤다. 하지만 두나라의 상이한 체제와 문화, 사회구성원의 의식 행위의 차이는 서로 다른 특성을 보인다. 70년동안 유산계급이 단절된 러시아의 경험에 비춰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는 양국이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토론〓진승권(陳承權)이화여대교수는 “민주화와 개혁에 있어 시민사회의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영토크기, 인종구성, 사회문화적 특성, 체제전환의 성격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영조(李榮祚)경희대교수는 “시민사회의 성숙이 민주주의 발달의 선결조건”이라고 전제하고 “한국의 민주화는 이미 공고화됐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멜빌교수는 “시민사회의 형성이 민주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점들을 저절로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제2회의: 시장개혁의 과정과 결과▼
▽러시아와 동남아국가의 금융위기(블라디미르 포포프 러시아 국가경제아카데미 연구원)〓러시아금융위기는 거시경제측면의 부실관리에 따른 것이며 금융위기직전 루블화가 과대평가됐다. 반면 동아시아금융위기는 은행과 회사들이 국제적 차입을 많이 한데 따른 신용의 과대확장 때문이었다. 러시아와 동남아는 체제전환기에 실질환율 도입은 화폐위기를 부를 수 있고, 정부나 사적부문의 채무위기는 국가화폐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신중한 경제정책을 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한국과 러시아 경제위기의 비교와 평가(박제훈·朴濟勳인천대교수)〓한국과 러시아의 경제위기 모두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하지만 체제적 요인이 공통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준 변수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정책결정자와 기업, 금융기관, 일반소비자 등 경제행위 주체들이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점이 지적될 수 있다.
▽시장개혁과 민주화―정치개혁과 경제개혁간의 관계(블라디미르 마우 러시아 이행경제연구원)〓경제발전은 정치과정에 영향을 준다. 러시아에서 시장경제가 안정되려면 민주제도의 성립과 시민사회의 발달이 선행돼야 한다. 러시아는 정치민주화가 이뤄지기 전에는 경제개혁이 제대로 실행될 수 없다. 혁명적 전환방식을 취한 러시아정부는 상당히 약화됐고 그 반동으로 권위주의체제가 들어설 가능성이 남아있다.
▽곰과 호랑이의 비교―러시아와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개혁(임경훈·林炅勳서울대교수)〓탈공산주의 이행경험은 민주주의가 보다 진전된 나라에서 경제개혁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경제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민주적이고 효과적인 국가권력의 창출이 필요하다. 시민의 정치참여와 협의기회가 확대돼야 정책의 실행가능성과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다. 양국은 경제개혁의 성공을 위해 국가와 사회간의 관계를 재구성하고, 정치적 책임성과 투명성을 제고해야 하는 공통과제를 안고 있다.
▽토론〓윤영관(尹永寬)서울대 외교학과교수는 “대통령을 직접투표로 선출하는 한국은 선거자금 마련과정에서 정경유착이 심해졌고 국가의 산업에 대한 자율성을 약화시켰다”며 결과적으로 정부가 효과적으로 경제개혁을 못하게 하는 요소가 됐다“고 지적했다. 권원순(權元淳)한국외대교수는 “정치민주화가 경제개혁에 항상 최적의 해결책은 아니다”며 “이미 수립된 헌정질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게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제3회의: 체제변화와 국가재건설▼
▽한국과 러시아에서 국가건설, 해체, 그리고 민주화―과거의 유산(하용출·河龍出서울대 교수, 김창진·金昌珍아태평화재단 연구위원)〓민주화 과정에서 관료제는 한국과 러시아 모두에 반개혁적인 권위주의 체제의 상징으로 여겨졌을 뿐이며, 개혁 의제를 정상적으로 담당할 새로운 행정체계 형성문제는 무시됐었다. 민주화 이행론에 대한 수많은 문헌에서도 관료제의 정상화 문제는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유산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만큼 개혁정책의 목표와 전략의 설정에 긴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세계화와 지역화의 상황속에서 본 러시아의 지방정치제도(이리나 보시기나 러시아 국제관계대 교수)〓러시아에서 진정한 지역화의 조건은 아직까지 성숙되지 않았으며 앞으로의 발전속도도 대단히 더딜 것이다. 러시아의 지역화는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며, 또 정치과정에서 대중을 배제함으로써 정치체제의 효율성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나타날 것이다. 세계화도 서구의 경험을 여과없이 받아들여 세계화의 형태만 채택하고 있으며 그 정수(精髓)는 배우지 못하고 있다.
▽한국과 러시아에 있어서 개혁과 분권화(장덕준·張悳俊국민대교수)〓두 국가는 전통적으로 중앙의 영향력이 지방에 강하게 작용해왔다는 점에서 닮았다. 한국과 러시아가 90년대 후반에 겪었던 경제위기는 두 나라의 중앙과 지방관계의 성격을 크게 변화시켰다. 경제위기라는 충격이 중앙과 지방관계에 준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러시아의 몇몇 지역을 선정해 사례연구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 각 지역과 중앙정부의 관계 변화, 지역 내부의 제도, 재정 구조, 엘리트의 구조와 정책결정 과정 등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
▽토론〓국가 관료제의 문제가 한국과 러시아에만 국한된 문제인지, 아니면 전세계적 문제인지에 대해 참석자들간에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또 중앙과 지방정부의 관계를 연구하는데 있어 구조적 변화뿐만 아니라 행동 유형을 비롯한 문화적 측면에 대해서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 등이 제기됐다.
정용덕(鄭用德)서울대교수는 “산업화 초기에는 관료와 산업이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했지만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국가는 독립변수로 변모하고, 산업은 국가에 대한 종속변수로 바뀌었다”며 “산업화와 제도의 변동을 상호 작용하는 관계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제4회의: 국제환경과 개혁▼
▽한국과 러시아의 전환에 대한 외부환경의 영향(홍현익·洪鉉翼세종연구소 연구원)〓한국의 체제전환에 대한 외부환경 변화는 국제정치 경제체제의 변화, 미국 등 주변강국의 한반도정책, 남북관계 등 세 차원에서 분석할수 있다. 이중 미국의 대한정책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97년 한국금융위기도 미국이 자국 금융자본가의 이해를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미끼로 한국에 보호 감독장치 없이 금융경제 자유화를 추진토록 한데 따른 것이다.
▽양원적인 사회와 세계화 증후군―외교정책결정의 경우(알렉세이 바가투로프 러시아 미국―캐나다연구소 교수)〓세계화는 개방된 국경, 상품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정보의 자유로운 이동이다. 세계화에 노출된 러시아 사회는 동질적인 근대사회라기 보다는 근대적 요소와 전통적 요소가 혼재되어 있는 사회이다. 새로운 국제환경을 불편하게 여기는 러시아가 수동적 외교정책을 펴는데 반해 미국이 주도하는 서구세력의 외교정책은 공격적이다.
▽대외정책상의 민주화와 민족주의적 경향(신범식·辛範植수원대교수)〓민족주의적 경향성은 각국의 국제정치적 위상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러시아 민족주의는 강대국에서 국력이 하강하는 시점에 민주화를 이룸으로써 과거현상을 유지하려는 보수경향으로 발전됐다. 반면 한국은 경제발전으로 개도국에서 상승하는 국면에서 민주화를 이룩해 민족주의적 경향이 자기확신적이고, 국제사회의 인정을 얻기위한 과시적 경향이 강하며 국제사회의 세력관계를 재편하려는 성향을 지닌다.
▽토론〓전홍찬(全洪燦)부산대교수는 “러시아는 세계화를 미국과 러시아의 대결이라는 구도에서 볼 필요는 없다”며 “세계화가 정착되면 미국이 러시아를 통제하는 상황은 벌어지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알렉세이 바가투로프 연구위원은 “세계화라는 새로운 국제질서속에서 누군가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음은 명확하다”고 반박했다.
신욱희(申旭熙)서울대교수는 “한국금융위기에 대해 내적요인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견해가 많은 만큼 외적요인을 과장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정리〓하태원기자·강윤희 서울대 러시아문제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