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유혈종식 합의 안팎]중동평화 재건 아직은 '살얼음'

  • 입력 2000년 10월 18일 01시 01분


화약냄새가 짙게 풍기던 중동지역에 과연 비둘기가 날아 오를 것인가. 17일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폭력사태 종식에 합의는 했으나 유혈충돌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올 지 전망하기는 극히 불투명하다.

‘피의 복수’를 외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들끓는 분위기로 미뤄볼 때 폭력사태 종식 합의문은 언제든지 휴지조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올 정도다.

먼저 이날 합의는 발표 형식부터 선언적이었다. 분쟁당사자인 이스라엘 팔레스타인간의 공동성명 형식이 아니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합의문을 발표했던 것. 따라서 합의는 했지만 그 구속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바라크 총리와 아라파트 자치정부 수반이 자국내 강경파의 반발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 내용도 조사위원회 구성 등 쟁점 사항을 구체적으로 정리하지 못하고 모호한 채로 남겨둔 부분이 많다. 시한에 쫓긴 클린턴 대통령 등 중재자들이 ‘일단 시간을 벌자’는 생각에서 미봉한 성격이 짙다.

“우리는 오늘 커다란 진전을 이뤘다”고 밝힌 클린턴 대통령도 “정상을 찾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점을 솔직하게 시인했다.

더구나 바라크 총리는 합의문 발표 직후 “앞으로 며칠간이 아라파트를 파트너로서 인정할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기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사회의 비난여론과 클린턴 대통령 등의 압박을 의식해 공을 일단 아라파트에게 넘기려는 속셈을 드러낸 것. 일단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겠지만 유혈사태가 그치지 않을 경우 군사행동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비친 것이라고 AP통신은 분석했다.

더 큰 문제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격앙된 분위기다. 합의문 발표이후에도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서는 시위가 계속되는 등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20일 동안 100여명의 팔레스타인 동포가 숨지자 이를 틈탄 팔레스타인의 이슬람 과격단체 ‘하마스’는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게다가 아라파트가 이끌고 있는 정파인 ‘파타’의 한 지도자마저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합의를 ‘실패’로 규정하고 소요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분위기를 의식한 듯 합의문 체결 뒤 아무 말도 없이 서둘러 가자지구로 돌아간 아라파트는 일단 폭력중단을 호소했다. 최근 영향력이 급속도로 약화되고 있는 아라파트가 앞으로 폭력사태를 제어할 수 있을 것인지에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 재개될 중동평화협상의 전개 과정에서 다시 양측이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 총성이 그치고 평화가 찾아오기까지는 아직도 거쳐야 할 험난한 가시밭길이 많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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