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정보국(M16) 미사일 피격…인명피해는 없어

  • 입력 2000년 9월 21일 23시 16분


서방 세계 최고의 보안을 자랑하는 건물 가운데 하나인 영국 런던 중심부의 해외정보국(MI6) 본부 건물이 소형 미사일의 공격을 받아 충격을 주고 있다. 이번 테러 공격로 사상자가 발생하지는 않았으나 피습 건물이 총리 관저가 있는 다우닝가와 국회의사당에서 불과 1㎞ 이내에 있다는 점에서 런던 시민들을 경악시키고 있다.

▼발생▼

20일 오후 9시45분경 런던 템스강 남쪽 제방에 위치한 영국 해외정보국 건물 8층에 미사일이 날아와 폭발했다. 폭발지점은 이 건물 내의 복스홀이라고 불리는 곳. 사고로 건물 일부가 파손됐으나 인명 피해는 없었다.

런던 시내의 목격자들은 이 시각 섬광과 함께 강렬한 폭발음이 들렸으며 곧바로 두번째 폭발이 일어났다고 증언했다. 한 주민은 스카이 TV와의 인터뷰에서 "분명히 두번의 폭발이 있었으며 내가 살고 있는 집이 흔들릴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창문이 흔들릴 정도로 큰 폭발이 잇따라 발생했다" 며 "누군가 첩보기관에 그토록 가까이 접근해 포탄을 발사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런던 경찰청의 앨런 프라이 테러 대책국장은 21일 "미사일 발사에 대한 어떤 사전 경고도 받지 못했으며 아직까지 발사지점을 파악하지 못했다"며 "다만 피해 정도가 경미해 박격포탄이라기보다는 소형 미사일에 의한 타격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수사▼

MI6 건물의 피격이 발생한 뒤 어떤 테러 단체도 자신의 소행이라고 밝히지 않고 있다. 수사기관들과 영국 언론은 북아일랜드 분쟁과 관련된 테러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프라이 국장은 북아일랜드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테러단체의 관련 가능성에 대해서는 "추측을 하기에는 너무 이른 단계"라고 전제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는 분명히 북아일랜드 반체제 단체의 연루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으며 "다른 집단이 MI6를 표적으로 삼았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중"이라고 말했다.

사고가 나자 런던 경찰청 소속 정사복 경찰 수천명이 해외정보국 건물 주변과 총리 관저 의사당 주변에 배치됐으며 경찰은 목격자 탐문 조사 등을 통해 정확한 발사 지점과 용의자를 파악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국 더 타임스지 등은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한 분파로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에 불만을 품고 있는 '리얼 IRA' 라는 분파 조직에 혐의를 두고 있다. 최근 '리얼 IRA' 는 영국과 북아일랜드 간의 무기반환 협정에도 불구하고 무기를 밀수하려고 시도했으나 MI6의 정보망에 걸려 무산된 적이 있다. 최근 리얼 IRA 가 최신형 로켓을 비밀리에 들여왔다는 정보도 입수돼 이 단체의 개입 혐의를 더욱 짙게 하고 있다고 더 타임스는 전했다.

▼범행동기▼

테러 전문가들은 이날 미사일 공격이 극히 대담한 테러 분자가 저지른 일종의 '무력 시위'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최근에 완공된 MI6 본부 건물은 폭탄 공격에 대비해 설계됐으며 방탄벽과 방탄유리를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폐쇄회로 TV 감시 시스템 등을 통해 엄중한 보안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범인이 MI6 본부를 공격하더라도 피해를 입힐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테러를 감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IRA의 분파조직 등이 연루된 범행이라면 여러 채널을 통해 추적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영국내 무정부주의자 단체 등이 테러를 저지른 뒤 '잠수함'을 타버린 경우라면 미사일 테러 수사는 윤곽조차 잡지 못한 채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권기태기자·외신종합연합>kkt@donga.com

▼M16 어떤 곳인가?▼

1912년 창설된 MI6는 군사정보부 제6부대(Military Intelligence Section 6)를 줄인 말에서 유래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비밀정보대의 하나. 현재 세계 각국에서 2000여명의 정예 요원이 활동하고 있다.

냉전시대에 미국 CIA, 소련 KGB와 함께 세계 3대 비밀정보기관으로 손꼽혀 왔다. 최대의 라이벌이자 공작대상이었던 KGB가 소연방의 해체로 약체화하면서 그 조직과 기능이 일부 축소 조정됐다. 존 메이저 전 총리가 비밀스런 영역으로 남아있던 MI6를 정부 조직으로 공식화했으며 현재는 외무부가 관할하고 있다.

영국에는 MI6와 쌍벽을 이루는 정보기관으로 국내 정보를 주로 다루는 MI5가 있다. MI5는 북아일랜드를 비롯한 국내 정보수집과 방첩, 대 테러 공작등을 전담하며 MI6는 마약거래, 밀입국 등을 전담해 왔다. MI6는 초대 국장이었던 맨스필드 커밍 이후 책임자를 'C' 로 부를 정도로 철저한 보안을 지켜왔다. 그러나 최근 공작원이 랩톱 컴퓨터를 잃어버리는 등 보안망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도 있다.

▼사건예견 영화 화제▼

'영국의 문화재'라고 불리는 첩보 영화 시리즈 '007'에 나오는 제임스 본드가 바로 MI6의 최정예 요원. 지난해 개봉된 이 영화 시리즈의 최신판 '007 언리미티드' (원제 The World Is Not Enough)가 마치 20일 발생한 테러 사건을 예견이나 한듯 MI6에 대한 테러공격 장면을 담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말 국내에서도 개봉된 이 영화는 피어스 브로스넌이 제임스 본드역을 맡고 소피 마르소가 여주인공으로 나와 악역을 연기했다. 이 영화 초반부에는 제임스 본드가 마침 MI6 건물에 머물러고 있던 백주 대낮에 테러 분자가 폭탄 공격을 시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날 미사일 테러 사건은 소형 미사일이나 로켓포탄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테러 주체도 영화처럼 국제 원유 시장의 독점을 노리는 세력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또 영화 속에서는 삼엄한 경계와 첨단 보안장치가 갖춰진 건물 내에서 폭탄이 터져 사상자까지 발생한다. 영화에서는 MI6 건물 주변의 템스 강변을 따라 제임스 본드와 테러범들이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이 실감나게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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