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를 달린다]보드카 마시며 정겨운 대화

입력 2000-09-06 18:37수정 2009-09-22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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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를 포함한 시베리아 취재팀은 6박7일동안 시베리아횡단철도(TSR)열차에서 모두 150시간을 보냈다. 저녁에 출발해 기차 안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오전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10시간 안팎의 짧은(?) 구간도 있었지만 하바로프스크∼이르쿠츠크 구간은 무려 60시간(2박3일)을 달려야 했다.

60시간 동안 취재팀이 탑승한 열차의 이름은 시베리아호. 차장인 옐레나 바베슈카의 안내로 객차에 오르니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정도의 좁은 복도 한편으로 늘어선 10개의 객실이 보였다. ‘쿠페’라고 부르는 4인용 객실에는 2층 침대 2개가 양쪽 옆으로 붙어 있고 침대 사이에 작은 탁자가 놓여 있었다.

옆의 객차는 객실이 모두 2인용인 ‘룩스(고급)’. 러시아 서민들은 1칸에 침대 6개가 있는 값싼 ‘플라취’를 주로 이용한다.

혼자 여행할 때는 물론 낯선 사람과 객실을 함께 써야 한다. 난생 처음 만난 남녀가 2인용 객실에서 며칠 밤낮을 함께 지내는 야릇한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기차가 출발한 뒤 처음에는 서먹서먹했던 사람들이 곧 친해져 맥주나 보드카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객실을 옮겨 다니며 끼리끼리 어울리는 모습도 보였다. 화장실의 세면대는 좁고 물도 조금씩 나와서 머리 감기도 불편했다. 그러나 기차가 역에 설 때마다 물을 채워 넣기 때문에 물은 떨어지지 않았다. 차를 마시거나 컵라면을 먹고 싶어 차장에게 부탁하면 언제든지 뜨거운 물을 가져다줬다.

객차마다 2명씩 있는 차장은 교대로 승객을 돌봤다. 열차가 역에 정차한 동안 누가 몰래 타지 않는지 감시하는 것도 차장의 몫. 승객들은 기차가 역에 설 때마다 내려서 음식 등 필요한 것들을 샀다. 상인들이 플랫폼까지 들어와 찐 감자나 달걀 과일 등을 팔았다.

이틀째 되는 날 KBS카메라기자가 갑자기 설사와 복통을 호소했다. 차장에게 도움을 청해 무선으로 의사를 불렀다. 다음역인 카름스카야 역에서 할머니 의사가 기차에 올랐다. 진찰 결과 병명은 이질. 의사는 주사를 놔 준 뒤 약을 처방했다. 진료비는 3루블(130원). 기차가 역에 설 때마다 연락을 받고 대기중이던 의사가 기차에 올라 치료하는 ‘릴레이식 진료’가 목적지까지 계속됐다. 하나같이 여의사들이었다. 밤이나 새벽에 역으로 달려온 그들에게 따로 사례를 하려고 해도 한결같이 사양하면서 푼돈을 진료비로 받았다.

며칠씩 열차를 타고 가다 보면 시간을 잊어 버린다. 더구나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 사이에는 7개의 시간대가 있어 TSR 위에는 7개의 시간이 존재하는 셈. 다른 시간대를 통과할 때마다 시간이 바뀌는 혼란을 막기 위해 열차 관련 모든 시간표는 모스크바시간을 기준으로 한다.

취재팀은 양해를 얻어 이르쿠츠크에서 노보시비르스크로 가는 바이칼호의 기관차에 2시간 동안 동승할 수 있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자 비좁은 조종실에서 기관사와 조수가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관사는 수동운전으로 출발했다가 속력이 붙자 자동운전으로 전환했다. 최고 시속은 150㎞였지만 보통 80∼90㎞를 유지했다.

이따금 무전기 소리만 울릴 뿐 적막이 흐르는 조종실에서 바라본 광활한 시베리아 대륙과 그 사이로 끝없이 이어진 철길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장관이었다.

<시베리아횡단열차〓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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