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화약고' 발칸, 불법이민 거점 됐다

  • 입력 2000년 8월 28일 18시 37분


‘유럽의 화약고’인 발칸반도가 ‘유럽 불법이민의 거점’이라는 또 하나의 오명을 쓰게 됐다. 발칸반도가 중국 동남아 이란 이라크 등지에서 몰려오는 불법이민자들이 서유럽으로 가기 위한 관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코소보 전쟁을 계기로 중국과 가까워진 유고가 주중 유고 대사관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손쉽게 관광비자를 발급하면서 베오그라드는 서유럽으로 가려는 수많은 중국인 불법이민자들의 교두보가 되고 있다.

반면 92∼95년 보스니아 전쟁때 이란 이라크 등 중동 국가들로부터 지원을 받았던 보스니아는 중동 출신 불법이민자들이 서방으로 가는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아시아 불법이민자들은 대개 비행기편으로 베오그라드에 도착한 뒤 아드리아해를 끼고 있는 보스니아나 크로아티아로 가서 보트 편으로 아드리아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갈 기회를 노린다. 일단 이탈리아에 도착하면 유럽연합(EU)내를 여행할 때는 여권 검사를 하지 않는 셴겐 조약에 따라 EU국가에 자유롭게 갈 수 있다.

이 바람에 아드리아해를 끼고 있는 이탈리아와 크로아티아는 불법 이민자들의 밀입국 행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에는 아드리아해를 건너던 밀입국 보트가 침몰, 무려 170명의 밀입국자가 사망하는 참사를 빚기도 했다.

이탈리아 당국은 지난달 중국 마피아 1명과 크로아티아인 2명이 이끄는 불법이민 알선조직을 적발, 조직원 40명을 검거했다. 이탈리아 당국은 이 조직을 포함한 3개 조직이 지난해 중반부터 중국→유고→크로아티아→아드리아해→이탈리아로 이어지는 루트를 통해 5000명 이상의 중국인을 밀입국시켜 6200만달러(약 682억원) 이상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중국인 1인당 밀입국 비용은 3만달러(약 3300만원) 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크로아티아 당국은 지난해 보스니아와 접경 지역을 통해 입국하려는 밀입국자 8000명을 체포한데 이어 올 상반기에도 1만명을 잡아들였다고 발표했다. 중국인과 동남아인, 아랍인들이 대부분인 이들은 수용소 등에 갇혀 있다가 추방된다.

크로아티아는 최근 밀입국을 차단하기 위해 보스니아와 협정을 체결했으나 정작 불법 이민의 온상인 유고와는 껄끄러운 관계여서 전혀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특히 유고 당국의 중국인에 대한 비자발급 조치는 중국의 인신매매 비밀조직들이 베오그라드를 불법이민의 주요 거점으로 선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주일에 두 번 있는 베이징(北京)발 베오그라드행 비행기편 덕분에 베오그라드에는 규모가 큰 중국인 타운이 자연스레 형성됐다. 드넓은 야외 시장을 끼고 있는 중국인 타운에 가면 중국 밀수품을 자유롭게 살 수 있다. 현지에서는 유고 당국이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비자 수수료와 비행기표 판매 이외에도 베오그라드 거주 허가서를 수천달러에 팔아 재미를 보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6월18일 영국 도버항에서 중국인 밀입국자 58명이 무더기로 사망한 사건 이후 서유럽에서는 불법이민 문제에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국제이주기구(OIM)는 최근 유럽 전체의 불법 이민자수가 약 300만명에 이르며 매년 30만∼50만명이 밀입국을 시도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크로아티아의 한 이민국 관리는 “미국 정부의 강력한 불법이민 근절정책 시행 이후 아시아의 인신매매 조직들이 불법 이민 타깃을 미국에서 유럽으로 돌렸다”며 “오랜 전쟁으로 국경통제가 허술한데다 이민 관련 법령이 미흡한 발칸반도가 새로운 거점으로 떠올랐다”고 지적했다.

〈박제균기자·파리〓김세원특파원〉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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