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사죄의 문화']최고책임자 직접 잘못된 일 용서구해

  • 입력 2000년 8월 14일 18시 28분


일본 TV나 신문에서는 공공기관 책임자나 기업체 사장이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기자회견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거의 틀에 박힌 듯이 진행되지만 일본에서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사과 기자회견에 나서는 사람은 최고책임자다. 부하직원이나 대리인이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최고책임자는 우선 그간의 경위를 설명한 뒤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진심으로 사죄를 드린다”고 말한다. 그런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몇초 동안 깊숙이 고개를 숙이는 것이 관례다.

7월 1일에는 식중독사건을 일으킨 유키지루시(雪印)유업의 사장이 나와 고개를 숙였다. 같은 달 12일에는 부도로 쓰러진 소고백화점 사장이, 28일에는 도쿄(東京)의 한 소방서장이 응급처치를 잘못해 환자가 숨진 데 대해 사과했다. 30일에는 구제 기미타카(久世公堯)금융재생위원장이 수뢰의혹으로 퇴임하며 고개를 떨궜다.

8일에는 기린음료 사장이 토마토 주스 캔에서 파리가 발견된 데 대해 사과하고 같은 날 출고된 토마토 주스 캔 61만개를 회수하겠다고 밝혔다. 10일에는 니가타(新潟)현 경찰본부장이 동료경찰의 교통위반을 눈감아 준 사실이 적발돼 부하경찰 11명이 서류송치되자 고개를 숙였다. 일본이 사과 기자회견을 중요시하는 것은 국민이 이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잘못을 저지르고도 공개적으로 사과하지 않으면 아직도 반성을 안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예가 사린가스로 무차별 살인사건을 저지른 옴진리교다. 옴진리교측은 ‘현재 공판이 진행중’이라는 이유로 사과를 거부하고 있다. 일본인은 옴진리교 자체가 용납할 수 없는 집단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공식 사과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나쁜 집단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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