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尼-泰-比 통화폭락 "금융위기 다시 올까"우려 목소리

  • 입력 2000년 7월 18일 19시 05분


97년 아시아 금융 위기의 진원지였던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 3국에서 통화가치 폭락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정국 불안이 이어지면서 루피아 가치는 1년 4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필리핀의 페소와 태국의 바트도 가치가 하락, 거의 외환 위기 때와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 경제 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은 적다고 하나 이들 3개국의 통화가치 폭락은 가까스로 회복국면에 들어선 아시아 각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3국 통화 중 가치가 가장 많이 하락한 것은 인도네시아의 루피아.

지난해 가을 새 정권이 출범한 직후 경제개혁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때 달러당 7000루피아까지 가치가 뛰었지만 올 봄 들어 외환시세가 하락세에 접어들어 18일에는 9500루피아 전후에 거래됐다.

태국 바트화는 11일 작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달러당 40바트선이 무너졌고 18일에도 40바트를 넘나들었다.

필리핀 페소는 이날 달러당 45페소 전후에 거래돼 외환위기 직후 최저치였던 98년1월의 46.55페소에 근접했다.

가장 큰 원인은 정국불안의 장기화. 인도네시아 와히드대통령은 경제각료와의 갈등과 잇단 경제실책으로 퇴진을 요구받고 있다. 태국에서도 지난달 말 야당 하원의원이 집단사퇴하며 연립여당에 해산압력을 넣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에스트라다정권에 대한 경제계의 불신이 뿌리깊다.

여기에 이들 3국이 정보기술(IT)산업에 대한 대응에 소홀했던 것도 통화가치 하락을 부추겼다. 세계적으로 IT혁명의 물결이 거세지고 있지만 이들 3국은 한국 싱가포르 등에 비해 설비투자가 크게 부진, 투자자를 실망다시켰다.

정국불안이 계속되자 기업이나 개인은 과거의 악몽을 떠올리며 달러화를 앞다퉈 매입하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수출기업은 시세 차익을 노려 연일 달러를 사들이고 있다.

태국에서는 외국인의 직접투자 증가세가 다소 둔화되고 있는 한편 대외채무의 상환에 따른 자본유출이 잇따르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이들 3개국 중앙은행은 “수출경쟁력 확보가 시급하기 때문에 특별히 외환시장에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태국) “만일 개입하게 된다 해도 최소한의 범위에서 하겠다”(인도네시아)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가치하락을 오히려 가속화하고 있다.

일본의 금융관계자들은 이번 통화가치 하락이 아시아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인플레를 유발해 아시아 경제의 상승세를 약화시킬 우려가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97년때와 무엇이 다른가…한국등 경제구조 견고▼

97년 7월 2일 태국 정부가 바트화 방어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를 도입하며 아시아 금융 위기는 본격화됐다. ‘아시아 환(換)태풍’은 이어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으로 남하한 다음 방향을 바꿔 북동진, 한국을 강타했다.

태국 바트화의 폭락으로 아시아 각국의 통화에 대한 회의론이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외국자본의 철수로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고 기업과 금융기관의 감춰진 부실이 낱낱이 드러났다. 국제 금융자본은 앞다투어 대출금을 회수했다.

이로 인해 아시아 전체의 달러 부족이 심화됐고 외채부담은 더욱 커졌다. 결국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지원받게 됐다.

그러나 이번 통화폭락은 과거 아시아 금융위기와는 다른 상황에서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아시아 전체로 확산돼 세계 경제를 뒤흔들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신코(新光)종합연구소 경제분석가 쓰루타 노리히로(鶴田典裕)는 “97년처럼 헤지펀드 등 국제투기세력이 투자자금을 회수하려는 움직임은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또 인도네시아 등 3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경상수지 등을 봐도 97년만큼 나쁜 수준은 아니고 한국 싱가포르 등 나머지 아시아국가들도 외화보유고가 크게 높아진데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실질성장률이 7%대로 전망되는 등 경제회복 안정권에 들어섰다는 평가다.

<도쿄〓이영이특파원> yes202@donga.com

<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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