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문학심포지엄]"21세기 화두 서사-환상의 만남"

  • 입력 2000년 6월 4일 19시 49분


한국어와 일본어처럼 문장이 일정한 몇개의 어미로 끝나는 교착어(膠着語) 시에서 운(韻)을 구현하는 것이 가능할까.

고도 경제성장의 신화가 붕괴하고(일본) 사회변혁의 이상이 사라진(한국) 시대에 문학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한국 일본 문학가들이 가진 문제의 ‘같음’과 ‘차이’, 공동의 과제를 확인하고 해답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5월31일, 6월1일 이틀동안 일본 혼슈(本州) 최북단 아오모리(靑森)시에서 열린 ‘제5회 한일문학 심포지엄-문학은 어떻게 변해가는가’. 문학과지성사가 주관하고 파라다이스문화재단이 후원했다.

▼양국 인기작가 대거 참가▼

첫날인 5월31일에는 한국시인 황지우 채호기와 평론가 이광호, 일본시인 후지이 사다카즈(藤井貞和) 작가겸 평론가 나가노 다카시(長野隆)가 두 나라 시인의 현대시 상황에 대해 토의했다. 둘째날인 6월1일에는 한국측 작가 김원우 윤대녕 서하진 김영하 은희경 신경숙과 일본작가 시마다 마사히코(島田雅彦) 히로타니 교코(廣谷鏡子) 평론가 가와무라 미나토(川村湊) 안우식(安宇植·오비링대 국제학부 교수) 등이 양국 소설의 상황을 토론한 뒤 1990년대 이후 문학의 변화상에 대한 종합 토론이 이어졌다.

세부 토론은 한국과 일본 문인 한사람씩이 짝을 이뤄 서로의 작품을 읽고 느낌을 말한뒤 질문과 토론을 갖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심포지엄 장소인 아오모리 그랜드 호텔 연회장은 200여명의 문학팬들로 성황을 이뤘고 아사히(朝日) 요미우리(讀賣), 마이니치(每日)신문 등이 취재단을 파견하는 등 관심을 표명했다.

▼詩부문―순수언어적 측면 조명▼

사전 조정없이 발표작품을 선택했음에도 토의는 자연히 양국 시에서 운(韻)의 가능성을 비롯한 순수언어적 측면의 조명에 모아졌다.

한국 시인 황지우는 ‘불속에 피어오르는 푸르른/풀이어 그대 타오르듯/술 처마신 몸과…’ 로 시작돼 ‘-=’의 음절의 두운(頭韻)을 갖는 ‘메아리를 위한 각서’, ‘->’ 음절의 두운을 갖는 ‘아직은 바깥이 있다’ 등의 실험적 시를 선보였다.

일본측의 후지이 사다카즈는 일본어 48개 음절 전체를 중복되지 않게 조합한 전통적 ‘이로하(いろは)시’의 변주 ‘구어부자유시’(口語不自由詩)를 선보였고, ∼り(∼하고) や(∼이나, ∼와) て(∼하며) 등의 각운을 갖는 ‘세계가 그냥 그렇게 되어 있던 옛날…’도 소개했다.

시인 황지우는 “후지이와 나의 시는 언어 자체에 내재한 음성적 성격의 해명을 시도한 것이다. 근대시는 시각적 상상력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시의 근원은 ‘노래’에서 시작된 만큼 다시 ‘소리’면에서의 시적 실험에 주목할 때”라고 말했다.

후지이는 “형식을 부과한다는 언어의 ‘부자유’를 통해 역설적으로 언어의 자유를 실현하는 실험이 가능하다”고 화답했다.

▼小說부문―새로운 작품해석 나와▼

소설부문 심포지엄에서는 동일한 텍스트를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읽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재확인됐다.

시마다 마사히코의 소설 ‘불타버린 율리시즈’는 여러차례 방화를 시도하다 수감된 한 남자의 이야기. 작가 김영하는 “주인공이 감옥에서 보통사람의 일상을 꿈꾸고, 반면 그가 실제로 행한 행위가 꿈보다 공포스럽다. 꿈과 현실의 반전을 통해 벗어날 수 없는 사회적 양상을 그린 것이 아닌가”라고 질문했다. 그러나 시마다는 “꿈과 현실의 반전을 통한 사회고발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정치 문화적 변동이 없는 사회에서 주인공의 범죄는 지루함을 달래는 행위일 뿐”이라고 응답했다.

은희경의 소설 ‘타인에게 말걸기’에 대해 작가는 “타인을 신뢰하므로 상처받기 쉬운 여자와, 상처받기 싫어 냉담한 삶을 이어가는 남자를 통해 소통이 단절된 사회를 그려보았다”고 설명했으나, 일본측 토론자 히로타니 교코는 “주인공 남자가 여자에게 침입당해, 자기완결성이 깨진 나머지 자기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인간이 된 것 아닌가”라며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종합부문―문학의 가능성 확대 전망▼

일본측 참가자들은 한국문학이 가진 사실성과 활력에서, 한국측 참가자들은 일본문학이 가진 환상성과 상상력에서 자국문학이 섭취할 수 있는 자양분을 찾을 수 있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평론가 이광호는 “한국의 80년대문학에 있어서 리얼리즘적 측면이 강조된 것은 지나친 도식화”라며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을 동시에 넘어서면서 독자적인 논리를 추구한 80년대 작품에도 주목해 줄 것’을 일본측 참가자들에게 당부했다.

그는 “21세기에는 서사와 환상의 세계가 만나 새로운 리얼리티를 확장 심화시키면서 문학의 가능성은 더욱 넓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6회 한일문학심포지엄은 2002년 한국에서 개최된다.

<아오모리〓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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