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후지모리 당선 무효"…페루 국제사회 고립 위기

  • 입력 2000년 5월 31일 00시 40분


미국이 29일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의 당선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히는 등 페루가 일방적인 대통령 결선 투표를 강행한 이후 안팎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28일 대통령 결선 투표에 단독 출마해 당선된 후지모리 대통령은 안으로는 야당과 반정부 세력의 폭동 가능성, 밖으로는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이라는 감당하기 힘든 시련에 직면했다. 미국에 이어 프랑스 스페인 유럽연합(EU)도 별도 성명을 통해 이번 선거가 공정치 못했음을 지적하고 나섰다.

미 국무부는 “새로운 개표 집계 시스템을 검증하기 위해 선거를 연기해 달라는 국제 선거감시단의 요청을 페루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는 유효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미 백악관 관계자는 “내달 4일 캐나다에서 열릴 미주기구(OAS) 총회에서 페루 문제를 공식 의제로 다루겠다”고 밝혀 미국과 EU가 경제 제재를 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은 일단 페루에 대한 경제 제재 가능성을 무기 삼아 재선거(3차 결선 투표)를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 퀸스대의 페루 문제 전문가 캐서린 코나한 교수는 “선진국들이 경제제재를 가할 경우 페루는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무엘 글레이세르 리마상공회의소 의장은 “선진국들이 경제 제재를 할까봐 정말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페루 경제 단체들은 대외 신인도의 추락과 차관 금지, 해외 자본 철수 등으로 인해 경제 위기가 닥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불안하기는 이웃 국가들도 마찬가지. 코스타리카의 미구엘 앙겔 로드리게스 대통령과 콜롬비아의 안드레스 파스트라나 대통령은 “이번 페루 선거가 불러올 부정적인 결과가 참으로 염려된다”고 말했다.

한편 28일 페루 수도 리마에서는 ‘후지모리 대통령의 당선은 무효’라고 주장하는 6만여명의 시위대가 밤늦게까지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수십명이 부상했다.

페루 내부에서는 야당의 ‘비폭력 저항운동’이 민중 봉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군이 동요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결국 알레한드로 톨레도 후보 지지 세력과 후지모리 대통령 반대 세력간의 조직적인 연대가 이뤄지느냐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외의 비판과 반발에 대해 후지모리 대통령은 29일 미 CNN방송과의 회견에서 “결선 투표는 공정하고 투명했다”며 외국 정부의 잇따른 비난을 일축했다. 후지모리는 또 대국민 연설을 통해 “앞으로 5년 임기 동안 진정한 민주화를 실현하겠다”고 주장했다.

최종 개표 결과 후지모리는 50.9%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야당의 톨레도 후보는 불참을 선언했는데도 17.1%를 얻었고 그가 요청한대로 30%이상의 투표지가 훼손되거나 무효표로 나왔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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