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도쿄]심규선/"우익 본령은 테러다"

  • 입력 2000년 5월 22일 19시 36분


일본 도쿄(東京)에서 살다 보면 일요일 아침에 늦잠을 자다가 시끄러운 확성기 소리에 잠을 깰 때가 종종 있다. 뭔가 큰일이 났나 싶어 창문을 열고 내다보면 검은 대형 버스가 눈에 들어온다. 차체는 물론이려니와 유리창까지 온통 검은색으로 선팅이 돼 있어 버스 안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가두선전차량 활개▼

버스 지붕 전후좌우에는 대형 스피커 4개가 달려 있고 뒤에는 초대형 일장기가 꽂혀 있다. 스피커에서는 아주 높은 볼륨으로 제2차 세계대전때 불리던 일본의 군가나 구호 등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바로 ‘일본의 명물’인 우익 가두선전차량이다.

이들 차량을 만나면 외국인은 섬뜩한 느낌을 받는다. 차체에 붙어있는 선전구호 때문이다. A라는 우익단체가 사용하는 버스의 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우익의 본령은 테러다. 우익이 테러를 하지 않으니까 녀석들이 날뛰는 것이다. 한발의 총성은 10만명을 동원하는 것보다 낫다.’

우익단체 회원들은 모두 짧은 머리에 구 일본군복을 조금 바꾼 듯한 제복을 입고 있어 더욱 위압감을 준다.

일본의 각 지방자치단체는 소음방지조례 등을 제정했기 때문에 이들을 얼마든지 단속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결코 없다. 항의하는 일본인들도 본 적이 없다. 한 일본인은 “우익세력이 사회를 위협할 정도로 커지지 않을 것으로 알고 있어 공연히 충돌해서 말썽거리를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이들의 활동자금은 어디서 나올까. 이들의 뜻에 찬동하는 사업가나 정치가들이 뒷 돈을 대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국회의원들은 이들이 자신을 칭찬하는 집회를 여는 것을 제일 무서워한다. 이를 ‘칭찬해서 죽이기’라고 한다. 비난이 아니어서 단속도 어렵다. 그러나 유권자들에게는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 따라서 제발 그런 집회를 열지 말라고 정치인들이 돈을 준다는 것이다.

▼政-財界서 자금제공▼

우익활동에 반대한다는 한 택시 운전사는 딱부러지게 얘기했다. “우익활동도 일종의 비즈니스 아니겠어요. 필요한 사람이 있으니까 돈을 줄테고, 돈을 받은 만큼 열심히 돌아다녀야 하겠지요.”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의 ‘신의 국가’ 발언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아직도 상당수 존재하는 것이 일본이다. 그래서 모리총리는 사과는 했지만 발언을 철회하지는 못했다.

<도쿄=심규선특파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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