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증시 신용투자 '시한폭탄'…매입액 50%까지 빌려

  • 입력 2000년 4월 2일 21시 07분


미국에서도 ‘신용융자 주식투자’가 급증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주식시장의 ‘시한폭탄’으로 여겨지고 있다.

증권사에서 주식투자할 돈을 빌려주는 신용융자는 미국에서는 주식 매입가격의 절반까지 허용한다. 융자이자율은 연 8, 9% 가량.

주가가 지금처럼 오르기만 한다면 이자부담은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주가가 일제히 떨어져 매입가격의 4분의1에 이를 지경이면 증권사는 투자자의 보유주식을 강제 매매하게 돼 있다. 따라서 주가급락기에는 투매가 투매를 낳는 악순환이 일어날 소지가 아주 높다.

미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신용 융자 주식투자’가 최근 유행처럼 번져감에 따라 활황 증시가 모래성처럼 무너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증권사 블랙리스트 마련▼

신용융자로 이자수입도 늘리고 주식거래 수수료도 챙기는 증권사마저 신용융자액을 제한하거나 폭락 가능성이 있는 주식의 블랙리스트를 마련, 여기에 이름이 오른 기업 주식은 투자하기 어렵게 막고 있다.

미 최대 온라인 증권사인 찰스 슈왑의 블랙리스트에는 270개사의 주식이 올라 있다. 이들 주식에 투자하려면 융자금의 80%는 증거금으로 내야 한다. 데이텍 온라인 증권사는 지난달 블랙리스트에 85개사를 올리고 아예 이들 회사 주식은 신용융자로는 살 수 없도록 했다가 투자자들의 반발이 거세자 나스닥시장을 주도해 온 퀄컴사를 비롯한 7개사는 블랙리스트에서 빼기도 했다.

물론 미국시장의 신용융자 주식투자 규모는 주식 시가총액의 1.5% 안팎으로 무려 30%까지 됐던 1929년 대공황 때에 비하면 미미한 편.

▼최근 6개월새 50% 급증▼

그러나 최근 6개월 사이 신용 주식투자 규모는 50%나 늘어 빌린 돈으로 한몫 잡으려는 심리가 확산되고 있는 것. 특히 투자 분석가들은 증시 신용융자액 증가율이 나스닥 지수 상승률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눈여겨 보고 있다.

샌포드 번스타인 투자자문사의 분석가 스티브 갈브레이스는 “신용융자 규모가 급증하는 것과 나스닥 주가상승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면서 “이른 바 첨단기술주에 ‘묻지 마’ 투자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나스닥 주가가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할 경우. 주가가 매입당시의 25%수준 아래로 내려가면 증권사들은 일제히 신용매입 주식을 강제매각하게 된다. 이 경우 주가 폭락은 또다른 폭락을 부르게 된다.

찰스 슈머 상원의원은 “미국 전체 가정 두집 중 하나가 주식투자를 하기 때문에 증시 대폭락은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충격을 준다”며 좀 더 엄격한 신용융자 제한을 촉구했다.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 측은 증권거래위원회(SEC)에 투자자들의 예탁증거금 한도를 현행 2000달러에서 2만5000달러로 높이자고 제안하고 있다.

▼그린스펀은 융자제한 반대▼

재미있는 사실은 증시의 거품 가능성과 인플레 촉진론을 내세워 온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신용융자 제한에 관한 태도.

그는 “기관투자가들의 거대한 자본력에 맞설 수 있는 것이 개인투자자들의 신용융자 투자”라며 융자제한에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1974년부터 변치 않고 있는 신용융자 주식투자 관련 규정 개정논의가 FRB와 SEC를 중심으로 진행중이라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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