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러시아 어디로]'푸티노믹스' 침체경제 활력소될까

  • 입력 2000년 3월 28일 19시 40분


블라디미르 푸틴의 당선소식이 알려진 27일 러시아 주식시장의 RTS지수는 22개월 만에 최고치인 249.2를 기록했다. 그의 당선은 98년 러시아 금융위기 이후 러시아 증시에서 고전을 면치못하던 외국인 투자가에게도 낭보였다. 주러시아미국상공회의소와 주러독일경제인연합 등은 곧바로 투자여건이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경제전문가들의 견해는 다르다. 이들은 푸틴의 신경제정책인 ‘푸티노믹스’의 정체가 모호하다고 비판한다. 푸틴진영은 대선기간 단편적 경제공약만 제시했을 뿐 푸티노믹스의 전체그림을 내놓지 못했다.그래서 일부에서는 “푸티노믹스는 없다”고 극언하고 있다.

이들은 10년 이상 장기침체에 빠진 경제가 정책하나로 살아날 수 없다고 말한다. 옐친정부에서 아나톨리 추바이스 전경제부총리가 주도했던 가격자유화와 사유화를 핵심으로 한 급진개혁정책은 인플레이션과 빈부격차, 산업붕괴 등의 부작용을 낳으며 실패했다. 이때문에 투자회사 르네상스캐피털의 미국인 경제전문가 롤란드 나쉬는 “그동안 러시아 정부에 너무 많이 속았다”며 “구체적 내용이 나오기 전까지는 낙관할 수 없다”고 푸티노믹스에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푸티노믹스는 국유자산부(사유화부)차관인 게르만 그레프가 이끄는 푸틴의 싱크탱크인 ‘전략연구센터’의 작품. 그레프가 내놓은 경제재건의 해법은 ‘국가주도의 시장경제’이다.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고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푸틴측은 10∼15년 후 경제를 유럽연합(EU) 회원국수준으로 올리겠다는 장밋빛 공약을 내놓았다. 이러한 자신감은 최근 러시아경제가 90년 이래 최고의 회복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 해마다 마이너스성장을 거듭하던 경제가 지난해 3.2% 성장했고 400억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러시아 정부는 올해 5% 성장을 장담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국제원유가 급등으로 석유수출이 늘고 루블화 폭락으로 러시아상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생긴 일시적 현상일 뿐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올리가르흐(재벌)의 경제독점과 정경유착, 악명높은 관료주의와 부정부패, 통제불능의 지방정부 등 경제를 망친 구조적인 문제는 여전한데 지표만 좋아진 것은 ‘우연’이라는 것이다.

푸틴의 경제정책을 들여다보면 모순투성이다. ‘국가가 주도하는 시장경제’도 선뜻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지만 러시아경제를 쥐고 흔드는 재벌을 비판하면서 막상 재벌의 돈으로 대선을 치렀다.

재벌의 시장독점문제는 물론 세제개혁 토지사유화 금융제도보완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국내총생산(GDP)의 50%에 이르는 지하경제, 연간 150억달러의 자본 해외유출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관료부패도 문제지만 구멍가게 하나만 열어도 마피아부터 달려오는 무정부상태를 바로잡지 않으면 외국기업의 투자를 기대하기 힘들다.

푸틴이 너무 조급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푸틴은 “그동안 우리가 너무 느렸기 때문에 이제 시간이 없다”며 고속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7개월 만에 최고지도자에 오른 푸틴은 경제도 똑같은 방식으로 단기간에 재건할 수 있다고 믿는 눈치다.

모스크바대 선임연구원 스베틀라나 수슬리나박사(경제학)는 “복합적인 경제문제를 짧은 시간에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차분하게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펴나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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