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선거 D-2]노벨상 리박사 野 천후보 지지 '돌풍'

  • 입력 2000년 3월 15일 19시 21분


총통선거를 이틀 앞두고 대만에 ‘리위안저(李遠哲·64) 돌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대만 최초의 노벨상(화학) 수상자로 대만인의 폭넓은 존경을 받고 있는 리박사가 10일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후보 지지선언을 한 이후 “대세가 천으로 기울었다”며 부동표가 급속히 천후보 쪽으로 돌아서고 있기 때문이다.

15일 타이베이(臺北)에서 만난 택시운전사 롄성파(連勝發·39)는 “누구에게 투표할 것이냐”는 물음에 머뭇거림없이 “아볜(천수이볜의 애칭)”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누구를 찍을지 결심하지 못하던 어머니도 리박사 때문에 아볜을 찍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만 정치대 4학년에 재학중인 린징구이(林靖貴·25)도 “리박사는 대만의 가장 큰 자랑”이라며 “그의 선택을 믿기 때문에 나도 천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는 천후보측도 여론몰이에 나섰다. 주요 신문에 리박사를 내세운 광고를 집중적으로 게재한 것.

자유시보(自由時報)의 전면광고에는 환히 웃고 있는 천후보의 사진과 리박사의 큼지막한 사진이 나란히 실려 있다. 마치 리박사가 천의 러닝메이트인 것처럼 여겨질 정도다. 두 사람 사진 아래에는 찌푸린 표정의 국민당 롄잔(連戰)후보와 무소속 쑹추위(宋楚瑜)후보를 각각 폭력배 출신 의원의 사진 옆에 실은 뒤 ‘대만의 미래를 누구에게 주겠습니까’라고 묻고 있다. 중국시보에도 ‘一個李遠哲還不(한명의 리위안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큼지막한 제목과 함께 리박사의 지지를 과시하는 광고가 실렸다.

처음 리박사가 천을 지지했을 때만 해도 쑹의 지지표를 잠식할 것으로 여겨 느긋했던 롄후보측은 선거 막판에 표심(票心)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자 당황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리박사가 천후보 진영에 가담한 영향이 생각보다 큰데다 일부에서는 ‘빅3’가 아니라 천과 쑹의 양자대결로 좁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

비상이 걸린 국민당은 리위안저 돌풍에 대한 총력 저지에 나섰다. 전통적인 국민당 지지표를 단속하기 위해 미국에 체류중인 고(故) 장제스(蔣介石) 초대 총통의 부인 쑹메이링(宋美齡)여사를 동원해 14일 롄후보에 대한 공개 지지 성명을 이끌어냈다. 또 대만 최대 기업중 하나인 포모사플라스틱의 왕융칭(王永慶)회장도 이날 “롄후보가 당선돼야 경제가 안정된다”며 롄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롄후보 지지 선언만으로도 부족하다고 판단한 국민당은 15일 리덩후이(李登輝)총통을 직접 내세웠다. 리총통은 이날 “내가 지지하는 후보는 롄잔밖에 없다”며 ‘집권당 후보지지 공식선언식’을 가졌다.

리총통은 또 자신이 ‘롄후보를 버리고 내심 천후보를 밀고 있다(棄連保陳)’는 소문이 사실이 아님을 명확히 했다. 그는 천의 대만 독립 주장이 ‘리덩후이 노선’과 일치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리덩후이 노선’은 없다”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무소속의 쑹후보는 15일에도 대만인의 안정 심리를 파고들었다. 쑹후보는 “내가 당선되면 중국을 방문해 평화협정 서명을 추진하겠다”며 “장래의 대만 지도자는 대만 국민의 행복과 안전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역내 평화와 안정 유지의 의무도 갖고 있다”며 자신을 지지해줄 것을 거듭 호소했다.

<타이베이=강수진기자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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