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어圈 이번엔 '경제전쟁'… 스페인 '중남미 기업 사냥'

  • 입력 2000년 3월 12일 19시 49분


스페인 정복자들이 총과 대포를 앞세워 중남미 원주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지 500년만에 스페인과 중남미 국가 사이에 소리없는 경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스페인 기업들이 1990년대말부터 이번에는 대포 대신 자본을 앞세워 ‘중남미 기업 사냥’에 나선데 이어 올해는 중남미의 인터넷 기업들이 잇따라 ‘스페인 시장 공략’에 나섰다고 영국 경제전문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스페인 석유업체 렙솔은 지난 해 134억달러(약 15조원)를 들여 아르헨티나 최대 민간기업인 에너지 그룹 야시미엔토스 페트롤리페로스 피스칼레스(YPF)를 인수했다.

칠레 상장기업 가운데 시가총액 기준 상위 3개사도 98년 모두 스페인회사에 경영권이 넘어갔다. 칠레의 전화회사 CTC는 스페인의 전화회사 텔레포니카 에스파냐에, 칠레의 전력회사 엔데사칠레와 에네르시스는 스페인의 전력회사 엔데사 에스파냐에 인수된 것. 스페인의 빌바오비스카야 은행과 산탄데르 은행도 최근 중남미에 뿌리를 내렸다.

이처럼 스페인 회사들의 중남미 진출과 기업인수가 활발해지자 중남미에서는 과거 스페인의 식민지 개척을 일컫는 ‘콩퀴스타(정복)’가 재현되고 있다는 뜻에서 ‘레콩퀴스타(재정복)’라는 말이 작년부터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에는 과거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던 중남미의 인터넷 기업들이 스페인으로 진출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브라질의 최대 인터넷 서비스 업체인 UOL은 지난달 스페인에서 포털 서비스를 시작했다. 미국에 본부가 있지만 아르헨티나인이 설립한 온라인 금융 서비스 회사 파타곤닷컴(Patagon.com)도 지난 달 스페인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아르헨티나의 인터넷 서비스 업체 엘 시티오 및 금융 서비스 회사 스톡스닷컴(Stocks.com)도 곧 스페인 시장에 진출할 계획.

스페인과 중남미 사이에 상호 진출과 시장쟁탈전이 이처럼 활발한 것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는 “식민시대의 유산인 스페인어가 양측에서 모두 쓰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태윤기자> terrenc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