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尼 첫 평화적 정권교체]"와히드" 연호속 보안軍 배치

  • 입력 1999년 10월 20일 19시 33분


80년대 후반부터 동아시아를 휩쓴 민주화의 물결이 20일 인도네시아에도 밀어닥쳤다.

인도네시아는 45년 독립 이후 54년만에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66년 수하르토 권력장악(쿠데타는 65년) 이후 33년만에 정권교체를 실현했다.

86년 필리핀에서 피플파워(민중의 힘)에 의해 독재자 페르디난도 마르코스가 권좌에서 물러난 이래 민주화의 격랑은 대만 한국 미얀마의 정치를 차례차례 변모시켰다.

이번에 다수의 인도네시아국민은 개혁적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를 지지했다.

국민협의회(MPR)가 압둘라만 구스두르 와히드를 뽑은 것은 국민여망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MPR는 점진적인 개혁, 안정속의 변화를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MPR에서 20일 국민각성당(PKB) 당수 와히드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발표되자 국민협의회 건물 안팎을 비롯한 수도 자카르타 시내 곳곳에는 PKB 지지자들이 몰려나와 “대통령 와히드”를 소리 높이 연호하며 국가를 합창했다.

자카르타 시내 한편에서는 개표 발표후 있을지 모를 소요 사태를 우려해 보안군 4000여명이 곳곳에 배치돼 긴장이 흘렀다. 특히 투표가 시작되기 직전인 이날 오전 11시반 자카르타 중심가에 있는 호텔 인도네시아 분수대 앞에서 폭탄이 터져 3명이 부상한 후 보안군의 경계가 더욱 삼엄해졌다.

며칠째 “메가와티 아니면 혁명”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벌여온 메가와티 지지자들은 패배를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참담한 표정.

○…이날 개표가 진행된 국민협의회 의사당 본회의장에는 한 표 한 표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흥분과 환호가 교차. 개표 초반 메가와티의 표가 10표 나올 때까지 와히드는 1표밖에 득표하지 못했으나 200표에 이르러서는 메가와티 110표 와히드 90표로 메가와티가 박빙의 리드. 그러나 550표를 넘어 와히드가 역전했고 그대로과반을넘겨당선이확정.

…투표 직전 골카르당과 군부 등은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메가와티 지지를 시사. 골카르당 당부의장 마르주키 다루스만은 영국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메가와티를 지지해서는 안될 이유가 없다”고 말했으나 선거 결과는 와히드의 승리로 나타나 양동작전이었을지 모른다는 추측도.

○…이날 국민협의회 의원들은 집권 골카르당이 후보를 내지 못하는 극도의 혼미 속에서 예정보다 30분 늦은 오전 10시반 의사당으로 입장. 메가와티와 압둘라만 와히드가 지명수락을 발표한 뒤 의원들은 사회자의 호명에 따라 한명씩 기명 투표. 투표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 오후 1시쯤 종료됐으며 선거관리위원회는 곧바로 수작업으로 개표에 돌입.

○…하비비대통령은 20일 후보사퇴 후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밀레니엄에 인도네시아를 이끌 새 대통령과 부통령을 강력히 지지해 달라”고 호소. 또 지난해 5월21일 취임한 후 정치 불안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자평.

○ …인도네시아 언론은 19일 이번 대선에는 “장님 벙어리 귀머거리 후보가 나서 경합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난. 영문 일간 옵서버지는 만평에서 하비비는 국민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이며, 메가와티는 언론을 기피하는 등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는 벙어리, 압두라만 와히드는 앞을 제대로 못보는 장님으로 각각 묘사. 와히드는 당선 직후 자리에서 일어나기 힘든 듯 앉은 채로 끝까지 경합을 벌였던 메가와티의 축하인사를 받기도.〈권기태기자·자카르타 AP AFP연합〉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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