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京대학살 폭로 일본내 재판,中-日 외교전 비화

  • 입력 1998년 12월 29일 19시 30분


1937년 12월 난징(南京)대학살의 참상을 폭로한 한 일본인의 일기를 둘러싸고 명예훼손사건 재판이 중일(中日)간 외교전으로 번지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87년 일본군 병사출신인 아쓰마시로(東史郎·86)가 난징대학살 때 자신이 목격한 일본군의 만행을 생생하게 기록한 일기를 책으로 출판함으로써 비롯됐다.

일기 공개 6년 뒤인 93년 4월 부대동료였던 하시모토(橋本光治)가 느닷없이 아쓰마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일기내용 중 “동료 하시모토가 중국인을 우편배달용 자루에 집어넣어 난징시 고등법원 맞은편에 있는 연못 속으로 처박았다. 자루에는 수류탄을 매달았으며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여 몇초 후 물 속에서 수류탄이 터졌다”는 묘사가 사실무근이며 난징대학살 관련 폭로내용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

재판은 명예훼손죄 성립을 인정했다. 96년 4월 도쿄(東京)지방법원에 이어 이달 22일 도쿄고등법원은 “일기 속에 묘사한 잔학한 행위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하시모토에게 50만엔을 보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내용이 알려지자 중국 각계에서 규탄성명이 쏟아지는 등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난징대학살연구회 가오싱주(高興祖)회장은 “일기공표 후 항의를 하지 않던 하시모토가 6년만에 소송을 제기한 것은 난징대학살을 부정하려는 세력의 사주 때문”이라며 “이 재판은 역사왜곡세력의 음모에서 비롯됐다”고 비난했다. 난징시법학회 등 관련 중국단체들도 일제히 항의하고 나섰다.

중국측의 항의가 거세지자 일본 외무성대변인은 25일 “일본은 난징사건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며 이번 사건은 개인의 명예훼손여부에 관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자 주방자오(朱邦造)중국 외교부대변인은 28일 “이번 사건은 단순한 민사소송이 아니다”며 “이는 일본의 소수 우익세력이 재판절차를 빌려 난징사건을 부정하려는 것으로 일본법원이 역사사실을 왜곡했다”고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이 사건을 둘러싼 양국간 감정대립은 최고법원 심리 때까지 더욱 달아오를 전망이다.

〈베이징〓황의봉특파원〉heb86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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