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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6월 8일 19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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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외환거래가 시작되자마자 엔화를 팔겠다는 주문이 폭주, 달러당 엔화환율은 가볍게 1백40엔대에 진입했다. 마쓰나가 히카루(松永光)대장상 등이 외환시장 개입의사를 잇달아 밝혔지만 엔화가치를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날 엔화급락세의 결정적인 원인은 “파리에서 열리는 서방선진7개국(G7) 재무차관회담에서 환율문제가 주요 의제로 논의되지 않을 것”이라는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장관의 발언.
국제사회가 개입하지 않는 한 어느 때라도 폭락세를 보일 수 있을 정도로 기반이 취약한 엔화는 이 발언으로 폭격을 맞은 것처럼 흔들렸다.
엔화가치는 올 2월이후 다소 기복은 있었지만 꾸준히 약세를 보여 1월말 달러당 1백21엔대에서 1백40엔대까지 이르렀다. 빠른 속도의 엔화 약세 행진인 셈이다.
엔화약세 달러화강세를 초래한 기본적인 원인은 공전의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미국과 2차대전 패전후 최악의 불황에 빠진 일본의 경기격차와 이에 기인하는 금리격차. 압축한다면 좀처럼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일본의 경기침체가 주범이다.
각종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심각한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극심한 내수부진과 금융기관들의 막대한 불량채권은 이를 대표한다. 일본은 내수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사상 최저수준의 금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금리를 더 인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엔화가치가 속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일본정부의 엔화가치 방어의지 천명에도 불구하고 일본 혼자서 시장개입을 효과적으로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일본은 엔화약세를 저지하기 위해 작년 12월과 올해 4월에 대규모 시장개입에 나섰으나 결과적으로 약세 저지에 실패한 바 있다.
따라서 미국의 협조개입이 절대로 필요하지만 미국이 이런 의지를 갖고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올가을 중간선거를 앞둔 클린턴 행정부로서는 해외로부터의 투자자금 유입에 의한 높은 주가가 무너지길 바라지 않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오히려 달러화가치가 완만한 상승세를 유지하는 것을 바라고 있다.
일본 외환시장 주변에서는 이미 “미일 양국의 본격적인 협조개입이 없는 한 엔화환율은 1백50엔까지 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엔화약세가 아시아 각국에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줄지 지금으로서는 종착역을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
〈도쿄〓권순활특파원〉kwon88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