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하르토이후의 印尼]만신창이 경제회생 「산넘어 산」

  • 입력 1998년 5월 24일 20시 12분


독재자는 갔지만 독재체제는 남아 있으며 권력승계는 ‘잠정적이고 불충분한 것이다. 이제 민주 법치국가를 만들기 위한 많은 어려운 과제가 남아있다’.

21일 수하르토 전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사임한 뒤 프랑스 르몽드지는 이같이 지적했다.

최악의 상황은 일단 모면했지만 민주주의로의 이행 등 정국전망은 오리무중이고 바닥에 이른 경제난이 풀릴 청신호는 어디에도 없다.

국가부도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구제금융과 신규투자의 재개 등 외부지원이 긴급하지만 여건은 그리 유리하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금융기구들은 인도네시아의 정치안정이 경제개혁과 동남아지역 안정에 필수적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지만 꼭 필요한 구제금융 ‘수혈’을 미루고 있다.

바차루딘 주수프 하비비정권이 경제개혁을 제대로 수행할 것으로 확신하지 못하는데다 피폐해진 경제의 회복 가능성에도 의구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인투자자와 화교자본이 쉽게 돌아올 기미가 없어 경제회복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대외채무 지불유예(모라토리엄)사태를 피해야 한다는 것. 외채가 1천3백16억달러인데 비해 외환보유고는 1백46억달러에 불과하고 신규차입은 거의 불가능하다. 국제금융기구의 구제금융 재개와 외채 일부 탕감이 해결책이지만 어느 것도 낙관적이지 않다.

소요와 폭동의 와중에서 IMF 10억달러, 세계은행(IBRD) 12억달러, 아시아개발은행(ADB) 15억달러 등 세 기구가 37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보류시켰다. 이들은 물론 미국도 “구제금융 재개의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는 자세여서 설상가상인 형편이다.

약 8백억 달러인 민간부문의 외채 재조정협상 전망도 불투명하다.

특히 약 6백77억달러에 이르는 채권이 물려있는 최대 채권국 일본이 아시아 각국에 채무변제를 독촉할 경우 인도네시아사태의 파장은 아시아권 전체를 제2의 환란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10%로 예측되는 가운데 인도네시아중앙은행은 외자유치를 위해 최근 금리를 연 60%까지 인상, 기업파산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주변국의 반응 및 자세도 관심사다. 세계 4위의 인구를 가진 이슬람권의 대국인데다 미 태평양함대의 해상 교통로가 걸려 있는 군사적 요충인 이 나라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적지 않다.

미국은 인도네시아가 심각하게 분열될 경우 동남아지역 안보에 위협요소가 될 것으로 보고 인도네시아의 친미노선과 국가통합을 유지하는데 신경을 쓰고 있다.

수하르토 퇴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 아시아에 대한 고삐를 더욱 단단히 쥐게 된 미국이 인도네시아의 앞날을 어떻게 구상하고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변수의 하나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인도네시아사태는 말레이시아 등 주변국은 물론 미얀마 중국 베트남 등 체제개혁이 절박한 국가들에도 ‘비상’을 걸게 했다.

국제사회는 수하르토의 사임을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단지 ‘해결을 위한 시작’으로 평가한다. 더욱이 그 해결의 열쇠는 인도네시아인들 자신보다 외부환경이 더 많이 갖고 있다.

〈정성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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