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공산혁명의 주역 블라디미르 레닌이 사망 70여년만에 생전의 소원대로 페테르부르크의 모친 곁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있을까.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지난 6일 페테르부르크 방문중 『올 가을 레닌의 시신을 페테르부르크로 옮겨 매장하는 방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밝혔다.
1924년 사망한 레닌은 방부처리돼 당초 목조 영묘에 안치됐다가 1930년 크렘린궁 앞의 붉은 광장에 갈색 화강암으로 지은 지금의 묘에 안치됐다. 레닌은 생전에 모친의 무덤이 있는 페테르부르크의 일반 묘역에 묻히기를 바랐으나 후계자들이 선전선동의 일환으로 그를 신격화하고 무덤도 성역화했다. 구소련시절 모든 공산당원은 레닌묘를 의무적으로 참배해야 했다.
「레닌〓성인」이라는 등식도 공산주의 몰락과 함께 끝났다. 침만 뱉어도 감옥행이던 레닌동상은 공산체제가 무너진 뒤 목에 밧줄이 걸려 끌어내려지고 발길질의 대상이 됐다.
레닌이 러시아 역사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러시아 역사를 후퇴시킨 장본인을 대단한 위인처럼 크렘린궁 바로 앞에 안치한다는 것은 묵과할 수 없다는 것이 옐친의 입장이다.
그러나 옐친의 국민투표 제안이 실시될지는 의문이다. 공산당이 다수인 두마(하원)는 지난 2일 『크렘린 일대는 유네스코 지정 역사보호지역』이라며 현재 상태로 레닌의 유해를 유지하자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학계의 반대도 만만찮다. 의학아카데미와 생물학연구소 등의 학자들은 『머리카락 하나 빠지지 않을 정도로 시체를 유지시키고 있는 기법은 놀라운 과학적 성과』라며 유해를 훼손할 경우 훌륭한 연구 기회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모스크바〓반병희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