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세를 일기로 24일 서거한 金達壽(김달수)씨는 전후 재일동포 제1세대를 대표하는 작가.
그는 식민지지배의 억압과 그에 따른 한국인의 슬픔과 증오를 유려한 필체로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초창기작품인 「현해탄」이나 「박달(朴達)의 재판」 「태백산맥」은 장대한 스케일과 리얼리즘에 충실한 기법으로 일본 문단에 충격을 던졌다.
10세때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일본아이들의 학대로 소학교를 중단, 공장잡역부 목욕탕화부 폐품수집상 등의 일을 하며 생활을 꾸려왔다. 당시 폐지로 모은 책 가운데 소설 역사등을 읽으면서 민족의식이 싹텄다고 본인은 회고했다.
독학으로 일본대학 예술과에 진학했고 43년 서울에서 경성일보 기자를 지냈다.
해방후 재일조선인연맹결성에 참여했으며 49년에 「후예의 집」을 발표, 문단에 데뷔했다.
일관되게 「극일(克日)」을 주장, 일본어로 조선사정을 소개하는 잡지 「민주조선」을 창간해 편집을 맡았으며 남북한을 등거리에 두고 쌍방의 민주화와 통일문제를 거론하는 입장에서 활발한 언론 활동을 펼쳤다.
그는 75∼87년 사이 간행됐던 계간지 「삼천리」의 편집위원도 담당했다.
그의 활동과 관련, 아쿠타가와(芥川)상 수상 재일동포 작가인 李恢成(이회성)씨는 『조국과 민족의 독립, 그리고 그 안에서 지식인의 존재방식을 묘사해 왔다』면서 『조직과 정치, 인간이라는 테마를 통해 「인간의 자유」라는 문제를 추구했다』고 말했다.
〈동경〓윤상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