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이스라엘 비판’은 최근 가장 뜨거운 설전을 부른 이슈였다. 발단은 이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 한 링크를 공유하며 “유대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가 없다”고 한 것이었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실시간: 이스라엘 병사들이 팔레스타인 아이를 고문한 뒤 지붕에서 던졌다”는 말머리를 단 영상이 나왔다. 이후 상황은 익히 아는 바다. 해당 장면은 ‘실시간’이 아니라 2024년 9월에 벌어진 일이었고, ‘아이 고문’도 사실과 거리가 있었다. 대통령이 허위정보를 보고 문제를 제기한 격이 됐다. 각계 인사가 참전했고, 이 대통령은 닷새간 총 6차례 반박, 재반박을 이어갔다. 흥미로운 점은 공방의 내용이 아니라 공방이 이뤄진 방식이었다. 대결의 시대, 정치권의 싸움법을 정확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싸울 땐 “위 아 더 월드”를 외쳐라
우선 싸움이 붙으면 토론의 판, 즉 무엇을 문제로 규정할 것인지를 바꿔 버린다. 반박이 들어오는 지점에서 맞받아치는 대신 재빨리 테이블에 다른 논점을 올린다.
이 공방에선 먼저 “대통령이 틀린 사실을 바탕으로 외국을 공개 비난하다니”, “SNS 메시지 발신 시스템을 점검해야 한다” 등의 지적이 쏟아졌다. ‘허위정보 기반 주장’이나 ‘대통령 SNS 직접 소통’의 적절성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에 대한 대응은? “보편적 인권은 존중돼야 한다”거나 “반인륜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라고 응수하면 된다. ‘인권’과 ‘전쟁 범죄’로 관심을 돌리는 것이다.
이 순간 이슈의 성격은 달라진다. 팩트나 책임을 따지는 문제에서 가치 대 가치의 충돌로 옮겨간다. 사실관계는 묻히고, 말의 향연이 펼쳐진다. 그러나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 몰아세우는 일만큼, 틀린 것을 다른 것이라 우기는 일도 문제다. 최소한의 시시비비도 가리지 못하면 진영 간 평행선 대결만 남기 때문이다.
그다음 필살기는 상대방에게서 도덕적 정당성을 빼앗는 것이다. 더 큰 가치를 들이미는 게 효과적이다.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 같은 것 말이다.
실제 공방이 달아오른 뒤 나온 말들을 보자. “내 생명과 재산만큼 남의 생명과 재산도 귀하다”(이 대통령), “우리도 세계 평화에 대한 자주적 입장을 천명할 지위에 올라섰다”(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자”(친명계 한준호 의원) …. 여기에 딴지를 걸면 냉혈한 취급을 받을 법한, 너무도 맞는 말들이다.
이렇게 싸우면 백전백승이다. 보편적 가치를 말하니 ‘내 편’도 많아진다. 하지만 큰 가치를 앞세우다 보면 공방을 촉발시킨 국내외적 맥락은 증발된다. 모호한 말이 종종 “권력자의 무기”(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되는 이유다. 왜 이 시점에 ‘하느님도 울고 간다’는 최고 난도의 중동 사태가 국가 현안이 돼야 했는지는 국민은 결국 알 수 없게 됐다.
비단 이번뿐일까. 이런 싸움법은 낯설지 않다. 윤석열 정권의 ‘정치검찰’, ‘국가폭력’이라고 하면 이게 대통령 사건의 공소 취소 문제라는 사실이 흐릿해진다. 극우 유튜버와 그들이 끌고 온 신규 당원에 휘둘리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어떤가. “당원이 당의 주인”이라는 일반론으로 맞서며 마치 민주주의 수호자처럼 군다.
‘작은 합의’는 뒷전, 기술만 늘어간다
싸움 참 쉽다. 대신 백날 논쟁을 벌여도 작은 결론 하나 얻지 못한다. 대통령 SNS 소통의 적절한 선, 국제인권 문제에 대한 동참 필요성 등 의미 있는 화두도 길을 잃는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으니 상대의 공격에는 다 나쁜 의도가 있다고 여긴다. 이렇게 ‘이스라엘 파동’은 상대를 부정하는 또 하나의 사례로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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