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 고환율 비명… 쓰디쓴 달고나 세대

  • 동아일보

달러 결제 익숙… 환율에 민감
해외 직구 줄이고 여행 줄취소… 서학 개미들 ‘환율 페널티’ 걱정
청년 사장은 원료비 상승에 한숨… “외국자본, 국내투자 유도案 시급”

“달러가 비싸지면서 사무실 운영비를 줄였어요. 해외 구독형 프로그램 이용료를 대느라고요.”

서울 강남구의 한 광고 스타트업 최고기술책임자 김상호(가명·33) 씨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김 씨의 회사는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해외 프로그램 구독료로 월 2000만 원 넘게 쓰는데, 원-달러 환율이 치솟으면서 고정 지출이 더 커졌다. 김 씨는 “한 달 지출이 수백만 원 늘어났다”고 말했다.

달러를 포함한 환율이 전방위로 오르면서 외화 결제와 투자에 익숙한 20, 30대는 더 큰 영향을 체감하고 있다. 해외 직구·여행 등 소비에서 외화 비중이 높고 달러 예금, 미국 주식 등 해외 투자도 활발한 이들이 이른바 ‘달고나’(달러에 고통받는 나) 세대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직구 끊고 여행 취소해요”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은 건 소비다. 2023년 관세청 분석에 따르면 해외 직구 결제액에서 20, 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40% 이상이었다. 즐겨찾기에 국내 쇼핑몰 대신 아마존이나 알리익스프레스 등 해외 사이트를 먼저 등록한 젊은층일수록 생활물가 충격이 컸다는 뜻이다. 미국 ‘블랙프라이데이’(28일)를 맞아 겨울옷을 직구하려던 최해인 씨(27)는 마음을 접었다. 최 씨는 “환율 때문에 가격 이득이 거의 사라졌다”고 했다.

여행 계획을 아예 취소하는 경우도 나온다. 회사원 이지윤 씨(28)는 넉 달 전부터 세운 미국 뉴욕 여행 계획을 포기했다. 이 씨는 “예산이 400만 원에서 600만 원으로 늘어 감당이 안 됐다”고 말했다.

특히 외화 재테크가 일상인 서학개미는 환율 변동성의 ‘유탄’을 맞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엔비디아 등 미국 주식부터 살펴보는 회사원 김다민 씨(31)의 관심사는 정부의 환율 방어책이다. 김 씨는 “국내에는 투자하고 싶은 종목이 많지 않아 미국 주식을 계속 보고 있는데, 고환율 장기화가 투자자에게 ‘불똥’이 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서학개미 송명오 씨(30)는 “국내 주식 상황을 개선하지 않고 환율이 치솟는 원인을 서학개미로 돌리니 억울하다”며 “원화로 다시 바꾸는 게 부담돼 달러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NH투자증권이 해외주식 보유자 69만5060명의 계좌를 분석한 결과 30대가 33.2%로 가장 많았다.

● 달러-위안화 쓰는 청년 자영업자도 타격

고환율은 초기 자금이 취약한 청년 창업·자영업자에게 특히 부담이다. 해외 원료를 들여와 가공하는 식품 스타트업 대표 전모 씨(34)는 “카카오 가격이 지난해보다 25% 넘게 올라 원료를 줄여야 했다”고 말했다.

소매점도 식자재 가격 상승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서울 종로구에서 방앗간을 운영하는 배건욱 씨(34)는 “한 가마에 40만 원 하던 중국산 참깨가 지금은 50만 원이 넘는다”며 “콩은 비싸져 아예 수입 자체를 못 하고 있다”고 했다. 도봉구 마트에서 베트남 식품 등을 파는 채모 씨(39)는 최근 소매가를 2배로 올렸다. 채 씨는 “손님 발길이 끊길까 조마조마하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수출 경쟁력 강화는 물론 고환율 국면에 큰 영향을 받는 청년층의 특성을 고려해 맞춤형 국내 투자 유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환 시장 안정화를 위해 수출 경쟁력을 강화해 원화를 안정시키고 투자 환경을 개선해 해외 자본의 국내 투자를 유도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2030세대는 외국계 서비스·시장 접근성이 높고, 적은 자금으로 사업과 투자를 병행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고환율 국면에서 훨씬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며 “근본적으로 환율을 안정시키려면 경기 침체 국면을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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