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도 혐의…1심 벌금 5만원→2심 재판부 무죄 선고
노동계 “법의 정의 다시 세워져 다행” 환영
기사와 무관한 자료사진. 뉴스1
“모두의 관심과 염려 덕에 무죄 선고를 받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협력업체 사무실 냉장고에서 초코파이 등 1050원어치 간식을 꺼내 먹은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던 피고인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입장문을 통해 밝힌 소감이다.
전주지법 제2형사부(김도형 부장판사)는 27일 절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A 씨(41)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벌금 5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A 씨는 이날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대신 A 씨 변호인만이 재판에 참석했다.
이날 노조를 통해 입장문을 전해 온 A 씨는 “재판부의 온정, 모두의 관심과 염려 덕에 무죄 선고를 받게 됐다. 저를 포함해 동료 직원들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게 돼 다행이고 감사하다”며 “그동안 무척 치욕스럽고 힘겨운 날들을 보냈다. 상호 호의를 기반으로 한 수십 년 관행이 한순간에 범죄가 돼버린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어 “사건이 대중에 널리 알려지며 주목받게 되는 상황도 매우 당황스러웠다. 고발인을 비롯한 업체에 대한 섭섭함이나 원망이 없을 수는 없지만 하청 회사로서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하청노동자인 저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며 “개인적으로는 원청사의 개입 없이는 발생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섭섭함이나 원망의 정도는 원청사에 더 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비록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신세지만 20여년 가까이 맡은 업무와 노동에 자부심을 가지며 회사 발전에 공로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아직도 의문”이라며 “다시는 이와 같은 일로 고통 받는 노동자가 없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관심과 응원 주민 모든 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직접 나서 말씀드리지 못하고 글로 전달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을 헤아려 달라”고 덧붙였다.
노동계에서도 즉각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이민경 민주노총 전북본부장은 이날 항소심 재판을 방청한 뒤 취재진 앞에서 “초코파이를 먹었다고 기소가 된 것에 대해 모든 국민이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이 사건 때문에 피고인이 많이 힘들어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노조를 탄압하기 위해 회사가 무리했지만 이번 판결로 법의 정의가 다시 세워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판결을 시작으로 노동의 정의가 살아있는 판결이 내려질 수 있도록 사법부가 노력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앞서 A 씨는 지난해 1월 전북 완주군의 한 물류회사 냉장고에서 450원짜리 초코파이와 600원짜리 커스터드를 꺼내 먹은 혐의로 기소됐다. A 씨는 보안 협력업체 직원으로 근무 중이었다.
물류회사 관계자의 고발로 수사를 받게 된 A 씨는 벌금 5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A 씨는 무죄를 주장하며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절도 혐의로 유죄가 확정될 경우 경비업법에 따라 직장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1심 재판부는 A 씨에게 유죄가 인정된다며 벌금 5만원을 선고했다.
이에 A 씨는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새벽 시간대 탁송기사와 보안업체 직원들이 냉장고 간식을 자유롭게 이용해 온 관행이 있었고, 냉장고 접근이 제한된 공간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다수의 직원이 ‘탁송기사들로부터 배고프면 간식을 먹어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한 점 등을 토대로 이 같은 정황을 배척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사건 사무실 구조와 냉장고 위치, 간식의 용도와 그 가격, 사무직원과 탁송기사, 보안업체 직원들의 근무 형태와 업무 내용 등을 종합해 보면 피해자 측이 ‘탁송기사들은 허락 없이는 냉장고를 열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은 근무 형태와 실제 이용 실태에 비춰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설령 탁송기사들에게 냉장고 물품을 처분할 권한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으로서는 탁송기사들이 간식을 제공할 권한이 있다고 충분히 착오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따라서 피고인이 간식을 가져가도 된다고 오인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고,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물건을 가져간다는 절도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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